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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경영 20년] <2> 신경영 선언 자리잡기까지-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 인터뷰

품질경영 밀어붙인 뚝심… 글로벌 기업 도약 기폭제 됐죠<br>"국내서 잘 나가는데 굳이…" 초기 내부 회의론 커지자<br>이건희 회장 티스푼 던지며 격노<br>83년 반도체산업 진출도 선대회장 설득해 관철시켜

이윤우

삼성전자는 1983년 3월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자리에는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등 두 사람이 나란히 참석해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윤우(사진) 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두 명의 회장 앞에서 반도체 공장의 공사 진행 계획을 상세히 보고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최근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접한 이 상임고문을 만나 신경영과 관련한 생생한 현장 이야기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신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티스푼 사건.

"당시만 해도 질보다는 매출과 성장 위주의 양적인 팽창 분위기였습니다. 성장을 하지 않고 품질 위주로 간다는 건 국민은 물론 산업계 전체 의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그때 일본에서 디지털 녹음기가 막 나왔는데 기존 아날로그 녹음기와 달리 소리 증폭이 잘되고 깨끗하고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문제는 이 녹음 내용이 삼성 임원 모두에게 공개됐는데 (이건희 회장이) 티스푼을 딱 쳤을 때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려서 임원들 모두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 자리는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선언을 통해 양보다는 질 위주로 삼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사장단에 힘주어 말한 후 사장단을 불러모은 뒤 자신의 신경영론에 대해 사장단의 평가를 듣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당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 회장에게 "아직까지는 양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꺼내자 이 회장이 격분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티스푼을 테이블 위에 던진 것이다.

"그만큼 품질경영에 대한 이 회장의 신념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이 상임고문은 이 회장이 양보다 질을 강조한 배경으로 국제화라는 환경 변화를 꼽았다.

그는 "(이 회장은) 막 무역장벽이 없어지는 것에 주목했고 국제화가 보편화되면 싸구려를 대량으로 만들 경우 세계 시장에서 안 팔릴 것이라고 확신하신 듯했다"면서 "(이 회장은 질 경영이) 장기적인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상임고문은 "이 회장은 실제로 LA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삼성 제품을 보고 품질경영 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신경영 메시지가 모든 임직원에게 쉽게 녹아들었을까. "단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임원들 사이에서는 국내에서 1등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굳이 혁신적으로 바꿔야 하냐는 의구심이 많았죠." 이 상임고문은 당시 신경영에 대한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음을 회고했다.

이 상임고문은 신경영이 '글로벌 삼성'의 기폭제가 됐음을 강조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삼성전자도 주판알을 튕겨보니 재산 다 팔면 빚만 남았다"며 "외환위기 이전에는 준비 단계에 불과했고 위기에 따라 신경영이 삼성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과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프랑크푸르트선언 당시 삼성은 국내에서는 잘 나가는 기업이었지만 해외에는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라 일본 등 해외에서는 아무도 신경영에 주목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해외 기업의 견제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상임고문은 품질경영과 도전ㆍ혁신을 신경영의 가장 큰 유산으로 꼽았다. 그는 "최근 휴대폰(갤럭시 S3) 출시를 앞두고 커버 도금 이상이 발견되면서 수십만대분을 다 버리고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만들어 질을 높였다"며 "조직과 의식부터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도전정신이 지금도 신경영의 정신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 상임고문은 반도체 사업에 대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억도 꺼내놓았다. "사실 선대 회장이 1983년 반도체 산업을 하겠다고 도쿄선언을 한 데는 이건희 회장의 뜻이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아무도 반도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라 자비로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지요. 그것만 봐도 10년을 앞서간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 반도체로 끝이 안 나니까 선대 회장이 보스턴에 박사 학위를 받으러 갈 때 IBM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견학하게 해 선대 회장을 설득한 거지요."

지역 전문가 제도도 회장 취임 전부터 이 회장이 주문한 제도였다. 이 상임고문은 "부회장 시절부터 계속 얘기를 한 건데 당시에는 해외 출장을 가기도 힘든 시절이라 임원들이 말을 안 들었다"며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이 강하게 질책한 후에야 임원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 회장은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날 때면 항상 "삼성은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한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이 강조하는 '앞'의 정의를 간단히 정리했다. "기업은 생명체처럼 변화하고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으라는 것이지요. (이 회장이 강조하는 '앞'은) 100년 기업, 200년 기업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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