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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2-4.어떤 나제도 제도적 틀안에서 ① 독일
입력2003-01-28 00:00:00
수정
2003.01.28 00:00:00
지난 1월 10일 독일 베를린 인근 포츠담시의 버핸드룽겐 협상장.
독일 공공노조(VER.DI)와 사용자 대표들이 이틀간의 심야 마라톤 임금 협상을 열고 있었다. 한달간 협상을 벌였던 양측 대표들은 지난 92년 이후 10년만의 공공부문 파업을 막으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서로 최후 통첩을 했다. APㆍAFP 등 유력 통신사들은 `독일, 전후 최대 파업 위기`를 연일 세계로 타전했다.
하지만 한스 요아힘 샤베도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대변인은 “독일의 노사간 협상 테이블은 항상 격렬하지만 파업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공공 부문도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새벽 0시30분(현지시간) 프랑크 브시르케 공공노조 위원장과 사용자 대표인 오토 쉴리 내무장관은 한발씩 물러나 임금을 최고 4.4%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주변 분위기도 차분했다. 피켓들만 간간히 눈에 띄었을 뿐 최루탄 가스나 폭력 시위는 물론 불끈 쥔 주먹을 힘차게 올리면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날 협상은 노사간의 모든 갈등을 제도적 틀 안에서 대화로 해결하는 독일 노사문화의 현주소를 또 한번 보여주고 막을 내렸다.
◇대화로 해결한다= 사실 독일에서 파업은 눈을 씻고도 찾아 보기 힘들다. 지난해 5월 DGB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IG메탈)는 전국 80개 사업장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는 지난 1930년 이후 70년만의 첫 파업으로 13일만에 끝났다. 지난해 6월 독일 건설노조(IG바우)의 파업도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물론 폭력 행위는 한건도 없었다.
한스 요하임 대변인은 “파업 때 사장 폭행이나 공장 점거 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폭력 행위는 갈등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경제노동성에 따르면 지난 91년~2000년 파업으로 인한 10년간 독일의 총 근로 손실일수는 11일에 불과했다. 이는 네덜란드 18일, 프랑스 77일, 스페인 327일 등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 물론 해마다 총파업을 3~4차례씩 벌이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파업은 노동자에게도 손해”= 이는 노조의 합리성도 한 몫 했지만 파업 요건이 엄격한 데다 노사 양측에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가령 노조는 파업 찬반 투표 때 75% 이상의 찬성이 나오지 않으면 파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 노조도 광범한 지지가 없거나 모호한 사안에 대해서는 파업에 돌입하지 않는다.
이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한ㆍ미 소파(SOFA) 협정 개정, 교육 개혁 등 정치ㆍ사회적인 이슈를 내걸고 섣불리 총파업에 돌입, 막바지에는 노조 간부들만 남아 흐지부지되는 국내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사용자들도 노조의 파업에 대항, 직장 폐쇄를 단행할 수 있는 법적 권리는 물론 사회적인 분위기도 조성돼 있다. 우베 마주하 독일경제인협회(BDA) 언론 담당 국장은 “합법적인 파업 때도 사용자는 공장을 폐쇄하면 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며 “이는 노조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데 큰 압력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파업은 노조의 권리지만 대신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 랄프 데브코스키 독일 경제노동성 노동보호과 전문위원은 “노사가 웬만하면 타협하려 하는 이유는 파업 피해에 대해 서로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ㆍ공공 이익이 최우선= 현재 독일은 동독 통합의 여파, 높은 인건비, 방만한 사회복지제도 등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과 사회적 이익을 위한 `노사 협력`은 불황 타개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었다.
지난 95년 클라우스 쯔비켈 IG메탈 위원장은 정부와 사측에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해고 중단과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설 경우 실질임금 동결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른바 `고용을 위한 노사정 연대`다. 이는 당시 실패로 끝났지만 현재 슈뢰더 사민당 정부 하에서 `새로운 3차 연대`가 협의 중이다.
특히 지난 2001년 폴크스바겐 노조는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5,000명을 추가 채용하는 회사측 제안을 수용,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샤베도스 대변인은 “어느 나라든 실업률이 높을수록 노조가 힘을 얻는 나라가 없다”며 “사회적인 이익과 실업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DGB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지멘스, 바스프,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 대기업들이 최근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를 실시했지만 노조가 `무조건적인 반대 투쟁`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주하 국장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는 지난 91년 543만명에서 2000년 885만명으로 늘어났다”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시대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임금협상이나 정리 해고 등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법적 뼈대를 만들어라. 이후 노사가 상대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화하라 ”. 샤베도스 대변인의 충고다.
[폴스크바겐ㆍBMW의 사례] 노사, 감원 최소화 위해 노동시간 유연화등 합의
독일 노사 관계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역설적이지만 경영 위기로 인해 정리 해고가 불가피할 때다. 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렸음에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까닭이다.
지난 90년대 폴크스바겐의 고용 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 93년 말 전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근로자 수를 10만3,200명에서 95년까지 7만1,900명으로 무려 30%나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노조측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에 회사측은
▲향후 2년간 주 4일제 노동제(28.8시간) 실시
▲노동시간 유연화
▲30세 이하 미혼자(4만명)는 1년 중 8~9개월만 근무
▲고령자의 단계적 노동시간 단축 등을 제시했다.
결국 노조측에서도 `2년간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임금이 10% 이상 깎이고 노동강도가 강화되지만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 회사측도 인건비 절감이라는 당초 목표를 무난하게 달성했다. 더 놀라운 것은 회사측의 정리 해고 계획 발표에서 마지막 타협안을 이끌어내기까지 걸린 기간이 2주일에 불과했다는 점. 협상도 단 5차례로 끝났다.
우베 마주하 BDA 언론담당 국장은 “대부분의 독일 기업은 경영 위기 때 임금을 인하하거나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서도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임금협약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도 해고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이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BMW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현재 감원을 최소화하는 대신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가령 주당 35시간을 일하는 근로자가 자녀의 학교 행사 참여 등으로 30시간밖에 일하지 못한다면 다음주에 5시간을 추가로 일하면 된다. 회사측은 어떤 수당도 주지 않고 초과 근무를 시킬 수 있다.
국내 현대ㆍ기아차가 차량 주문이 아무리 밀려도 노조의 반대로 다른 라인의 근로자를 재배치할 수 없는 것과 달리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독일에서는 너무나 쉽게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BMW는 41년 연속 흑자와 18년 무(無)파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회사측도 지난 2001년 전 직원에 IG메탈이 정한 성과급(60%)의 두 배인 120%를 지급하는 등 이익의 일부를 반드시 성과급으로 노조원에 돌려주고 있다.
하이케 뮐러 BMW 인사담당 그룹장은 “이는 경영자와 노조가 서로를 믿고, 회사를 위해 가장 좋은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글로벌 시대에는 노동 시장도 유연성(Flexibility)을 갖추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랄프 데브코스키 경제노동성 전문위원도 “독일은 인건비는 높지만 생산성 향상에 노조가 앞장서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파업이 없다”며 “아직도 수많은 외국인 투자가들이 독일에 진출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별교섭은 줄고 개별교섭 는다
“노동법 전문가인 나도 개별 교섭이 이렇게 많아졌는지는 미처 몰랐다”
독일 경제노동성을 방문했을 때 랄프 데브코스키 노동보호과 전문위원은 “독일은 산별 노조가 정착돼 있기 때문에 개별 교섭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히다 기자의 거듭된 확인 요청에 다른 부서에 문의를 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는 산별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정작 산별 노조의 원조격인 독일에서는 기업별로 단체 협약을 체결하는, 이른바 `분권화` 경향이 대세로 등장하고 있다. 즉 산별 사용자단체와 산별 노조가 교섭을 체결, 모든 동종 기업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개별 회사의 경영진과 산별 노조가 근로조건을 합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독일 경제노동성에 따르면 산별 교섭은 지난 91년 4,666건으로 전체 교섭 중 63%를 차지했으나 2001년에는 3,394건으로 50%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개별 교섭의 비중은 지난 91년 37%(2,750건)에서 2001년 50%(3,300여건)로 늘어났다.
최성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복지팀장은 “이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생산성ㆍ영업이익 등 경영 환경이 서로 다른 기업에 일률적인 임금 및 고용 기준을 적용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독일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 노조가 뒤늦게 산별 교섭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적 추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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