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영국까지. 비행기로는 10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 쫓겨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겐 다른 얘기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이 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국경 곳곳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검문소는 이들의 도망 길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지난 2003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인 디스 월드’가 오는 8일 국내에 선보인다. 한국에는 2년 지각했지만, 영화에 그려지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폐허이고, 간신히 국경을 넘은 전쟁 난민들은 파키스탄 국경마을에 모여 질긴 목숨을 연명한다. 영화는 난민들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맞춘다. 짐짓 담담한 어투로 전개되는 영화는 이들의 고통을 온 몸으로 삼켜낸다. 영화 속엔 실제 아프간 출신 난민 고아소년 자말이 출연한다. 벽돌공장에서 하루 1달러 급료를 받고 일하는 자말에게 이 곳을 탈출할 기회가 온다. 가족들이 사촌형 에나야트를 런던에 보내기로 한 것. ‘영어통역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소년은 사촌형의 런던행 도망길에 동행한다. 이들 앞엔 죽음보다 무서운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게 런던행은 여행이 아니다.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이들 앞엔 런던에 데려다 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적잖다. 물론 모두 사기꾼 브로커들이다. 국경 검문소의 위병들 역시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 워크맨 라디오까지 뜯어내며 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사막을 두 발로 걷거나 트럭 바닥에 매달리거나 버스 짐칸에 몸을 싣거나.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다. 생존이 달린 여행이기에 로드무비 특유의 신나는 흥분과 설레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난민들을 비루하게 그리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들이 펼쳐놓는 썰렁한 유머는 보는 이를 더욱 가슴 저미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형식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다. 전쟁의 고통은 관객의 가슴을 그대로 후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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