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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이후] 관피아 근절에 폴리페서 뜬다지만… 되레 정치권 입김 키울수도

공무원 취업 제한에 교수·연구원 대안 부상 불구

공기업·산하기관 이끌기에는 수·질적으로 부족

정치권·관료, 지인들 내세워 자리공백 메울 우려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의 산하기관 취업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퇴직관료를 대체할 세력으로 학계 및 연구소 인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와 '폴리서처(polisearcher)'다. 관료세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계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연구집단만으로는 크고 작은 공기업을 비롯한 산하기관을 이끌기에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칫하면 관료 공백을 정치·관료집단이 친인척이나 지인을 우회 침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외교부 장관 자녀의 특별채용이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관피아' 적폐를 근절하려다 되레 공권력이 정치권이나 이익단체에 휘둘릴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도 나온다.

◇폴리페서 전성기 오나=현재 장·차관 가운데 교수 및 연구원 출신은 총 13명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처럼 관료 출신이지만 연구소를 거친 경우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다. 박 대통령도 여느 대통령처럼 관료 출신을 경계했다. 특히 관피아의 원조 격인 모피아(재무부+마피아)는 정권 초부터 주요 공직에서 배제할 만큼 멀리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관피아 낙하산 척결선언 이후 시나리오는 현 정부의 모피아와 금융계 인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모피아가 독식하던 3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홍기택 회장), 기업은행(권선주 행장), 수출입은행(이덕훈 행장)은 모두 학계 혹은 내부 출신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자리도 모피아 몫이 학계에 넘어갔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관료 출신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모두 외부인사로 채워진 것은 상당히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관료 대신 손을 잡은 것은 학계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공공기관장 153명 중 관피아가 51명(33.3%)으로 가장 많고 이어 △다른 부처 및 연구원 출신 37명(24.2%) △교수 출신 30명(19.6%) △국회의원 등 정치권 출신 17명(11.1%) △내부 출신 18명(11.8%) 등이었다. 관료에 이어 교수·연구원 출신이 가장 두터운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은 박근혜 정부의 신진세력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금융연 출신인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이건호 KB국민은행장 등은 금융계 요직을 줄줄이 꿰찼으며 KDI 출신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고영선 국무조정실 국무 2차장 등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치권 입김 세지나…비전문성 우려=박 대통령이 섣불리 관피아를 견제하려다 오히려 정치권력과 이익집단의 입김이 커지는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전문성이나 업무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캠프 출신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경우 가뜩이나 방만한 공공기관 경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정치권 백수들이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으로 내려오면 정권 차원에서 추진 중인 공공기관 정상화 작업은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실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부채 상위 25개 공공기관(2012년 결산 기준)의 기관장·감사·이사 등을 집계한 결과 친박 인사는 정치인 출신인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 34명이나 포진해 있다. 공기업 개혁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박 대통령이 취임 초 밝혔던 낙하산 근절 원칙을 관피아 개혁이 화두인 이때 재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움츠러든 공무원 조직이 민간에 휘둘릴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공무원이 못 가는 단체의 장에는 사기업 집단에서 밀어주는 인사가 앉고 그 단체는 사기업 이익만 대변하게 돼 또다시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술한 재취업 관행은 내버려둔 채 퇴직공무원의 취업제한 기간과 대상 기관부터 늘려놓은 것도 문제다.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제도의 실효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관피아 대책은 며칠 만에 고민해서 내놓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섣불리 대책을 내놓은 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정권 내에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문가'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상투적이기 때문에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전문성이 없는 유신 사무관들을 대거 뽑았다가 공직사회를 망친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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