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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나와 우리집의 고3병
입력1998-11-16 00:00:00
수정
1998.11.16 00:00:00
李建榮(전 건설부차관)거리에 나가면 낙엽이 거리에 수북히 쌓인다. 날씨도 제법 차가워졌다. 어느새 가을도 저물어 가고 있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계절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을까. 이른바 고3병 탓이다. 내일이 수능시험일이고 우리 식구는 지금 고3병을 앓고 있다. 요즘의 고3병은 1년을 앓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3년을 앓는 병이다.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보면 그동안 공부한 참고서와 문제집들이 방에 꽉 차 있다. 고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마음 고생도 컸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인데 소위 교육개혁이네 뭐네 하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며 제도를 이리저리 바꿔대는 바람에 아이들은 혼란스러웠다. 결국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미아가 되어 검정고시를 치뤄야 했다. 그래서 우리집의 고3병은 유난히 힘들었다.
물론 내가 고3때도 고3병을 치루었다. 가난했던 60년대였다. 대개는 학원이나 과외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참고서나 문제집도 몇권을 아껴 보아야 했다.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보고 또 서로 바꿔 보았다. 코피를 쏟은 것이 도대체 몇번이었나.
그래도 요즘처럼 부모님들의 극성이 없었고 대신 낭만이 있었다. 공부하다 지치면 친구들과 인왕산을 한바퀴 돌았다. 학교의 잔디밭에 모여 앉으면 대학생활에 대한 젊은 꿈이 무궁무진하였다. 당시 나는 소위 문학병에 걸려 있던 때라 숨어서 세계명작을 탐독했고 또 노트에는 가득히 소설습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시험으로 들어갔고, 대학은 법대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건축과에 재응시하여 재수를 한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고생이라기 보다 젊은이로서의 도전의 기회였다.
입시는 경쟁이다. 이 사회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비와 시험과 경쟁의 관문을 거친다. 경쟁은 힘든 것이지만 필요한 것이며 발전의 촉진제다.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일본도 모두 일류학교에 대한 경쟁은 우리보다 더하다. 이것이 바로 그들 국가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경쟁을 두러워 하는가.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내놓는 대안도 한심하다. 몇번에 걸친 입시제도 변경끝에 지금 전국의 대학을 「나란히」 세워 놓았다. 누가 어느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수능 몇점짜리 인생인지 금새 판별이 난다. 그러면서 한편 점점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여 변별력을 없애고 경쟁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 소위「찍기」로 뽑자는 것이다. 앞으로 시험 대신 무시험 전형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깨끗한 승부가 아니다. 경쟁이 공정해야 고3 고생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고3병의 굴레를 벗어나면서 나는 제발 공정한 시험제도를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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