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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표 식품 선발 경연대회에 출전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2012년 초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김을 팔던 박향희 사장(45ㆍ사진)은 뜻밖의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중국 롯데마트에서 진행할 '한국 상품특별전'의 후보자를 찾고 있으니 '박향희 구이구이김'으로 오디션을 보라는 것이었다. 발신자는 롯데마트였다.
박향희 구이구이김은 들기름을 듬뿍 바른 후 즉석에서 맥반석 위에 구워 옛날 김 맛을 재현한 청주지역 명물로 꼽힌다. 김 자반의 경우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아몬드 등 견과류를 첨가해 건강기능성을 높여 일반 제품과 차별화했다. 이런 차별화된 경쟁력 덕분에 박사장의 구이구이김이 입소문이 나자 롯데마트도 러브콜에 나선 것이었다.
박 사장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재래시장 상인으로 일해오면서 도전정신을 실천해온 그였다. 그는 3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우승해 중국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김 하나로 중국 입맛을 잡다=박향희 구이김은 작년 3월과 7월 롯데마트 지우시엔차오점, 양차오점, 왕징점, 상하이점, 하이먼점 등 5개점에서 진행한 한국 상품특별전에 대표 상품으로 소개됐다. 롯데마트가 수출입, 통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적극 지원해줘 해외 시장 진출 준비는 수월했다.
중국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가 몰려왔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식품 사업을 하는 홍콩 업체 5곳이 판권을 사고 싶다고 제의해왔다. 국내 재래시장 상인이 해외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업체 선정을 저울질할 정도가 된 것이다. 홍콩에서 바이어를 만나던 중 기자의 전화를 받은 박 사장은 "홍콩뿐 아니라 중국에서 얼마나 사업을 잘 할 수 있느냐를 보고 최종 업체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점에서 대형마트 대박상품으로=박 사장은 2002년 청주 육거리시장 노점에서 김 장사를시작했다. 기존 상인들의 텃세도 있고 여러 조건이 여의치 않아 시장 맨 끝자리에 좌판을 깔았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 누가 봐도 최악의 자리였다.
하지만 박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리가 아닌,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면 손님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매시설도 마찬가지다. 노점이다 보니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기 어려웠다. 특히 김을 구우면서 생기는 연기 처리가 문제였다. 뿌연 연기는 집객에 방해가 됐다. 박 사장은 연기가 나지 않는 김 구이용 기계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다 직접 개발에 나섰다. 3년 간의 노력 끝에 지난해 말 실내에서도 김을 구울 수 있는 무연 집진기기를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무연 기기 덕분에 박 사장은 올초 롯데마트 서청주점에도 입점하게 됐다. 골목상권 상인이 대형마트에 스카우트된 셈이다. 롯데마트 서청주점과 육거리시장은 자동차로 불과 15분 거리다.
박향희 구이구이김은 하향세를 보이던 롯데마트 김 매출을 상승세로 반등시키며 김 시장 판도를 바꿔놨다. 여운철 롯데마트 수산 상품기획자는 "요즘 구이 김의 점포당 매출은 월 500만~600만원 선으로 몇 년 전의 절반에 불과한데 박향희 구이구이김 입점 후 매출이 2,000만원으로 4배나 뛰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박향희 구이구이김 입점 점포를 전국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재래시장 상인의 해외시장 노크=박 사장은 "대형마트 입점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꿈꿔 온 오랜 목표였다"면서 "국내 판로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도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가운데 롯데마트를 선택한 것도 해외 점포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박 사장이 진출을 추진 중인 중국에는 105개의 롯데마트 점포가 있다.
롯데마트가 중소상인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박 사장은 "자영업자는 언어소통, 절차 등의 문제로 해외 진출 엄두를 못 내는 데 대기업이 같이 지원해주니까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해외 시장에서 성과도 나오고 있다.
롯데마트 중국 점포에서 첫 선을 보인 후 호주와 미국 업체가 김을 수입해가고 있다. 박 사장은 "두 지역 수출은 아직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국내 물량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내년이면 한국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 사업이 본격화하면 박향희 구이구이김은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더 많은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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