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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그늘
입력2004-02-04 00:00:00
수정
2004.02.04 00:00:00
국제부 기자
`자기 생각이 없고 인생에 희망이 없는 사람`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계 등 일부 다국적 기업들의 노동 규정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들이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하청 생산공장 직원을 채용하면서 이 같은 기준으로 신규 직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값싸고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긴 위해선 배운 것 없고 속칭 `빽`없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실제 모 대기업을 사례로 들며 남미의 한 하청 공장이 생산직 여직원을 채용하면서 임신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인터뷰 과정에서 피인터뷰자의 옷을 모두 벗겼으며 가족 중에 변호사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친척이 있으면 탈락시키라는 구체적 지침도 내려보냈다고 폭로했다.
다국적기업은 21세기 세계경제의 화두 `세계화(Globalization)`를 이끄는 첨병들이다. 선진 정부나 기업 및 국제 지도자들은 세계화가 자본주의의 국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국가간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균형을 가져와 성장의 파이가 커지고 이에 따라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세계화의 경제성장 논리는 차치하더라도 노동 환경 등에 미치는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최근 세계 정ㆍ재계 지도자들의 연례 모임인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도 급격한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이 집중 논의된 바 있다. 통상 세계화에 대한 찬송을 낭송해왔던 이들이 주요 의제로 세계화의 문제점을 거론한 것을 보니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거대 기업들은 이익 극대화라는 지상 명제속에 무자비하고 끝없는 효율성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국경 없는 무한경쟁으로 나타나고 덕분에 소비자들은 세계 어느 곳의 제품이든 안방에서 클릭 하나로 값싸고 편리하게 구매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세계화는 이른바 `소비자 천국시대`를 낳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저편에는 무한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어 신음하는 저개발국의 노동자와 파괴돼가는 환경이 놓여 있다. 하지만 기업은 물론 정부는 외자 유치와 고용확대라는 당면 과제에 밀려 끊임없이 다국적기업에 손을 벌리고 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에서 노동 환경에서 앞서가는 기업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가 구성됐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어느 조직에 속해 공급망 사슬(supply chain)의 일원이기도 하다. 정부나 기업이 거대 자본의 힘에 떠밀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힘들 다면 우리 같은 소액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병관 국제부 기자 come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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