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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경제에 전공을 가져라/임종건(데스크 칼럼)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김영삼 대통령은 4년전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던 제1차 APEC(아·태경제협력체)정상회의때 창립주도국 대통령답게 위풍당당했다. 많은 회원국들이 김대통령에게 다가와 경제적지원을 요청했다.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APEC정상회의에서 김대통령은 다른 회원국들에 달러를 구걸하는 모습으로 전락했다. 김대통령 개인으로도 참담한 심정이겠지만 국민들 가슴속엔 지울 수 없는 멍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 것은 국가적 수치이다. 그것은 일본의 2차세계대전 패전에 비유할만 하다. 일본은 패전후 맥아더사령부에 의해 재벌이 해체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재벌해체에 버금가는 정부와 산업의 구조조정이 요구되고 있다. 외부적 충격없이 구조조정은 어렵게 돼 있다. 부패와 유착으로 얽혀 있는 한국산업의 구조와 체질 때문이다. IMF의 구제금융이 산업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거기서 위안을 찾기에는 국민적 자존심 손상이 너무 크다. 김대통령의 실패는 그것 자체로 교훈거리는 된다. 대통령의 실적은 궁극적으로 경제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지도력의 책임은 그중에서도 가장 무겁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아닌 이상 대통령이 경제이론이나 수치를 잘 알기는 어렵고,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다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판단해 이를 관철하는 추진력을 발휘하면 족하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이 경제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시간도 모자라다. 그점에서 대통령은 경제에 관한 전공분야가 있어야 한다. 경제는 상호연관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하나를 전공하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 살아보세」를 정책목표로 내세웠다. 빈곤퇴치는 경제의 전부에 해당된다. 이 목표를 위해 그는 전방위로 경제에 접근했다. 18년동안 장기집권을 했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유리한 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억압에 대한 보상을 경제에서 찾고자 했음으로 그의 경제개발에 대한 집념은 강렬했다. 그의 집념과 노력은 성장의 터를 닦는데 성공했고 그것이 그가 오늘날 재평가를 받는 이유다. 전두환 대통령은 물가를 주전공으로 했다. 그래서 예산동결조치까지 취했다. 그 결과 집권 초년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한국경제는 그의 집권말기인 86·87년에 사상처음 연속무역수지 흑자를 이뤘고 후임 노태우 대통령도 그 기조아래에서 2년간 흑자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경제에 관한한 이렇다할 전공이 없었다. 주 전공이라면 북방외교 쯤을 들 수 있겠다. 한중교역을 비롯한 북방국가들과의 교역증대 터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를 인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북방국가들과의 수교는 시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고 큰 비용을 들여가며 추진할 성격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소련에 제공한 30억달러의 차관은 아직도 받을 길이 막막하다. 이 때문에 그의 집권 후반 3년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됐고 그후 지금에 이르러 적자는 눈덩이가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에 전공개념이 있었는지 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임기내내 무역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2백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적자를 냈고 올해에도 1백50억달러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실명제와 하나회해체, 전직대통령 구속을 치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으나 경제활동을 고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한풀이 식의 정치적 개혁이었을 뿐 민생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실명제라도 제대로 시행해 투명사회를 만드는 기능을 하도록 철저히 마무리를 했어야 하는데 도처에 구멍이 뚫린채 방치돼 이제는 전경련같은 단체에서조차 폐지를 주장할 만큼 김대통령의 개혁의지는 얕잡힌 상태이고 경제의 걸림돌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요란한 국제화구호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 등은 마치 선진국이나 된양 국민들의 가슴에다 거품만 끼게 했다. 너도나도 밖에 나가 돈쓰기에 바빴다. 1만달러 소득 수준에 2만달러 소비 국민이라는 비아냥을 샀다. 결과론적인 얘기일지 몰라도 김대통령은 수출을 전공으로 했어야 한다. 임기내내 수출을 독려했어야 한다. 불필요한 수입을 억제하는 방안을 강구했어야한다. 무역수지를 흑자 아니면 균형으로 만들 방안을 찾을 사람을 골라 경제장관으로 썼어야 했다. 그 약속을 못지키는 장관은 갈아치웠어야 했다. 인사권의 행사는 그런데 쓰라고 주어진 것이지 인심이나 쓰라고 주어진게 아니다. 그랬더라면 WTO(세계무역기구)체제나 반도체수출가 하락 등에 수출부진을 둘러대는 장관에게 호통칠 수 있을 정도는 됐을 것이다. 또 지금의 외환 및 증시위기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임기 5년에 나라를 거덜 낸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근본적으로 무역수지 적자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외화소요액 5백억달러는 최근 5년간 우리나라가 대외교역에서 적자를 낸 액수와 거의 일치한다. 경제활동에서 공짜는 없다. 무역수지 적자는 그만큼 나라가 빚을 졌다는 얘기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돈을 벌거나 씀씀이를 줄이는 길 밖에 없다. 그런 상식을 모른체 하며 계속 적자를 방치했다. 그러고도 외환위기를 맞지 않는다면 기적이다. 다음 대통령의 경제 전공이 무엇이어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수출을 늘리는 것이다.<부국장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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