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가격을 담합한 밀가루 생산업체가 중간소비업체인 삼립식품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원료 제공업체의 가격담합이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송은 원료업체의 담합과 관련해 최종소비자가 아닌 중간소비자(식품가공업체 등)들에 대해서도 별도 손해배상을 처음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식품업계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적발한 제당ㆍ정유ㆍLPGㆍ전자업체 등에서도 중간소비자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판결의 당사자인 식품업계는 어느 정도 파장이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립식품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양호승 변호사는 "그동안 밀가루 공급자의 시장지배력 때문에 식품업체들이 유무형의 피해를 우려해 소송을 꺼려왔다"며 "이번 판결은 중간소비자에 대한 배상책임 법리를 명확히 한 것으로 기업ㆍ소비자의 피해회복 움직임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그동안 담합에 대해 과징금으로 처벌해왔지만 리니언시제도 등으로 과징금을 면제ㆍ감면 받아 처벌 효과가 미미하다 보니 담합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실질적인 담합 근절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립식품의 승소는 원료업체의 '갑'으로 취해온 행위에 타격을 입히기에 충분하다"면서 "소극적인 업계 특성상 시간을 두고 다른 업체의 움직임을 본 후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농심ㆍ롯데제과 등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라면업체나 제과업체들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밀가루 가격인상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던 골목상권의 소규모 제빵업체들이 개별적 또는 단체 소송에 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유ㆍLPGㆍ제당ㆍ전자업계도 파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이들 업계의 담합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적이 있으므로 중간소비자가 별도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담합의 폐해가 많았던 설탕 등 원료업계를 비롯해 최종제품까지 중간단계를 많이 거치게 되는 전자ㆍ자동차ㆍ기계 등 부품산업계 등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가격인상으로 항의를 많이 받아온 LPG업계도 법정소송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LPG를 공급 받는 사설 주유소, 택시회사, 도시가스 소매사 등이 소송에 나설 경우 피해배상으로 골머리를 앓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밀가루 시장에서 비롯됐지만 독과점업체들의 담합에 법적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경고성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관련 업계가 담합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정도경영에 힘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산업계 전반에 담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