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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이인환대(異人歡待)
입력2004-06-09 18:24:09
수정
2004.06.09 18:24:09
'극진한 손님접대' 정착민족 특성
에스키모인들은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아내나 딸을 동침케 한다. 이러한 풍습을 이부시숙(以婦侍宿)이라 하는데 극진한 손님 접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사극 ‘왕건’에 보면 왕건이 백제의 금성을 침공하기 위해 배를 만들고 군사들을 조련하는 동안 정주지역의 토호 오장자의 집에 머물자 오장자가 딸을 왕건과 동침케 하는데 이것이 곧 시숙 풍속이다. 또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유명한 시를 쓴 양사언의 어머니도 시숙을 한 여인이었다.
즉 각별한 손님에게 처첩이나 딸을 내어주는 풍속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며 비교적 널게 퍼졌던 것임을 증명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19세기 초까지도 여관이나 음식점이 발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길손들이 어렵지 않게 여행 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무 마을이나 들러서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면 숙박은 물론 융숭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인 환대, 외부인에 대한 친절은 사실 낯선 곳에서 온 사람이 전염병을 옮기거나 악령을 몰고 오지 않나 하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외부의 소식에 어두운 형편이라 나그네에게 다른 지방의 소식을 듣고자 하는 목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했던 점도 있지만 일정 공간에 고립된 정착민족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개화초기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쳐들어 온 외국함대에 사신을 보내어 ‘만리풍파에 시달려 시장할 테니 약소하나마 소 한 마리와 닭50마리, 계란 1만개를 주겠노라’고 했을 정도니 우리나라의 이인풍습도 못 말릴 정도였다.
마을마다 장승을 세우고 고립된 문화를 유지했던 삶의 형태가 빗어낸 문화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이인환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성의 성을 한낱 물질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극진하게 대접해야 할 손님이 거의 남성이었겠지만 공양미 삼백 섬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를 비롯하여 성적 접대와 진상의 대상이 모두 여성이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잔재 때문인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에 비해 접대비의 비중이 매우 높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접대도 식사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급술집을 거쳐 2차까지 시켜주는 풀 코스(?) 접대문화가 특징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감하게 떨쳐내야 할 구습의 하나이다. 이제 세계가 하나인 개방된 생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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