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인텔이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할 대상이다”(폴 오델리니 인텔 CEO)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AMD 부사장은 한국의 정보기술(IT)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겠다고 전격 발표해 인텔을 바짝 긴장시켰다. 인텔이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정작 AMD가 아니라 삼성전자 때문이었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LCD, 가전까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삼성전자가 AMD와 손잡는다면 인텔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찾을 수 있다. TV, 냉장고 등 가전에서 출발해 반도체, LCD, 휴대폰 등으로 영역을 확대되며 전세계 IT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삼성전자의 스피드는 경쟁업체들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맺고 있는 유기적인 협력관계 덕택”이라며 “특히 전사차원에서 진행된 포괄적 병행개발이야말로 사업부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또다른 경쟁력은 클러스터 전략이다. 기흥과 탕정사업장은 각각 반도체, LCD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D램부터 낸드플래시, 시스템LSI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전무는 “10분이면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반도체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다”며 “클러스터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스피드 경영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도 클러스터 효과를 톡톡히 본다. 메모리와 시스템LSI 등 서로 다른 분야 연구원들의 협업을 통해 메모리와 비메모리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인텔도 부러워하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은 선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IT제품의 가격 특성상 초기단계에서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팔아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실패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는 빠른 의사결정에 의한 조기투자로 선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누렸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14년째 메모리반도체에서 1등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우선 과감한 투자를 꼽을 수 있다. 실제 1993~2000년 7년동안 삼성전자는 D램에만 연평균 1억3,4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도시바, 히다찌, NEC, 후지쯔 등 일본 4대 D램 생산업체의 연평균 투자액보다 4.7배나 많은 금액이다. 빠른 대량생산체제 구축과 신제품 개발 속도도 삼성전자의 강점. 삼성전자는 신제품개발에서는 인텔 등 선두 업체에 뒤졌지만 대량생산체제를 조기에 구축하고 경쟁업체보다 두발 앞선 기술개발을 추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쟁력중 하나는 공정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나노공정의 조기 도입으로 삼성전자는 경쟁사에 비해 원가를 줄이며 계단식 제품가격 하락에 대응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삼성전자의 신속한 대량생산체제 구축과 신제품 개발, 생산라인에서의 다양한 공정혁신 등은 삼성식 조직혁신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 인텔, 'IT업계 절대 강자' 우뚝 글로벌 생산라인·과감한 R&D 투자…전세계 R&D센터 75개 달해
침체기에도 투자 게을리 안해…미래기기 예측능력 최고수준" 미국 산타클라라의 인텔 본사를 처음 찾는 방문객들은 누구나 깜짝 놀란다고 한다. 미션칼리지 블루버드를 아무리 둘러봐도 대규모 생산라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숲속에 는 아담한 건물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생산라인이 어디냐는 질문에 인텔 관계자들은 '월드 와이드(Worldwide)'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71년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프로세서(4004)를 생산한 웨이퍼 가공라인은 인텔의 첫 공장이자 인텔이 실리콘밸리에 세운 마지막 공장이다. 37년간 인텔은 세계 7개국에 생산설비를 갖추며 세계를 인텔의 품안에 안았다. 인텔 관계자는 "글로벌 분산 전략으로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세계 모든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텔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에 머뭇거림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PC용 메모리칩의 성과보다 미래 생존과 성장을 우선한 인텔의 경영전략은 인텔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IT업계의 절대강자의 위치에 올려놨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는 인텔이 가지고 있는 기술 경쟁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IT시대의 모든 것이 인텔에서 시작돼 인텔과 함께 완성한다는 의미인 인텔 인사이드는 인텔의 최대 경쟁력인 기술리더십의 상징이다. 인텔은 전세계에 75개의 R&D센터를 가지고 있다. 침체기에도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IT버블이 붕괴된 2000년 인텔은 12인치 웨이퍼 개발과 신제품 개발에 무려 28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인텔의 R&D는 단순한 기술개발이 아닌 인간의 행동을 연구해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인텔 본사의 '인간행동연구소'의 인류학, 심리학 박사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이 어떤 디지털 기기를 필요로 할 지 예측한다. 마틴 레이놀즈 가트너 수석연구원은 "인텔은 직접 소비자에게 제품을 팔지는 않지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며 "디지털 세상에서 어떤 새로운 기기가 나타날지 예측하는 능력이야 말로 인텔의 최고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2006년 인텔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한때 싸구려로 인식되던 AMD가 캐나다의 그래픽 칩 제조사인 ATI를 인수하며 인텔의 뒤를 바짝 쫓고 있기 때문이다. AMD는 ATI의 칩셋 제조 능력을 이용해 인텔의 독점권을 무너뜨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앙리 리처드 AMD 부사장은 "인텔의 독주를 막고 2015년까지 전세계 인구 절반이 (싼 가격에)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인텔 공격에 기치를 올리고 있다. AMD의 도전과 시장점유율 하락에 대해 인텔은 '다이어트' 처방을 내놨다. 오델리니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해외지사까지 포함해 관리자급 1000명을 감원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 2년마다 신제품을 출시해 경영의 스피드를 높일 계획이다. 제프리 휴 가트너 연구원은 "절대강자의 여유를 부리던 인텔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라며 "스피드 경영측면에서는 인텔이 삼성전자를 벤치마킹 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인텔에 배울점은 기술 리더십 유연한 조직문화 벤치마킹 해야 삼성전자와 인텔은 전형적인 코피티션(Copetition) 관계를 맺고 있다. 플래시메모리와 모바일 CPU 등 특정 제품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D램과 CPU에 있어서는 고객이자 공급업체로 얽혀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텔은 삼성전자가 넘어야 할 산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PC시대를 넘어 디지털컨버전스 시대의 1등 자리를 놓고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한국형 경쟁력의 모델이라면 인텔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톱 반도체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자 경계 대상 1호인 셈이다. 인텔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리더십이다. 40년 가까이 쌓아온 반도체 시장의 기술 리더십은 분명 삼성전자가 배워야 할 부문이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은 인텔의 기술리더십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팀을 가동하며 아시아 시장부터 차근차근 기술리더십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가 2004년부터 대만에서 열고 있는 모바일솔루션(SMS) 포럼. 지난 3월 열린 SMS포럼에서도 삼성전자는 차별화 된 전략으로 인텔을 따라잡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인텔이 40년 동안 반도체업계 1위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인 최종소비자를 생각한 제품개발이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텔은 75개에 달하는 글로벌 R&D센터와 최종 고객인 원하는 제품의 개발에서 시작된다"며 "인텔의 플랫폼(Platform) 전략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인텔의 플랫폼 전략은 과거 CPUㆍ칩셋ㆍ플래시메모리 등 단품 위주로 개발ㆍ생산ㆍ판매에서 이를 하나로 묶어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2003년 노트북 전용 플랫폼인 '센트리노'에 이어 인텔은 소노마, 앵커 크릭, 요나, 제피로스 등의 플랫폼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기술리더십과 제품뿐만 아니라 유연한 조직문화도 인텔에게 배워야 할 부문이다. 삼성전자는 1등주의와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메모리 라인을 보유한 전자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문화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도 인정하는 부문이다. 인텔은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다양성을 강조한다. 8만5,000명에 달하는 전세계 임직원으로 이뤄진 인텔은 다민족ㆍ다인종 기업답게 서로간의 벽을 무너뜨렸다. '1-on-1' 토론제도는 업무와 관련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토론을 할 수 있다.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은 인텔의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인텔의 생존전략이라고 소개한다. "인텔의 미래는 지위가 높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8만명 전세계 직원 모두가 인텔의 미래"라고 그로브 회장은 강조한다. /특별취재팀= 정상범 팀장(산업부 차장)·이규진·이진우·김성수·김현수·김홍길·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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