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무역구제에 발목이 잡혔다. 우리 측이 무역구제 절차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7일까지 가부 답변을 달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지 하루 만이다. 미측은 일괄적으로 수용 여부를 묻는 한국의 태도가 비합리적이라는 반응이지만 우리 측은 무역구제는 절대 관철시켜야 할 5차 협상의 최대 목표라는 점에서 회의 중단을 선언하는 강수를 썼다. 무역구제ㆍ자동차ㆍ의약품 등 3개 분과 협상이 중단된 6일 오전(한국시간 7일 새벽). 한미 양측 수석대표는 번갈아가며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서로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한미 양측은 “희망은 있다(remain hopefulㆍ웬디 커틀러 대표)”, “(빅딜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무역구제에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이는지 보고 말하겠다(김종훈 대표)” 등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구제 의회 보고서 제출 만료 시점인 12월 말까지 한미 양측은 FTA 채널뿐 아니라 정치적 루트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어서 한미 양측은 물밑 접촉을 통해 ‘뭘 주고 뭘 받냐’를 결정하는 단계에 본격 돌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빅딜(Big Deal) 수순 들어갔나=무역구제 등 3개 분과 협상 결렬 후 웬디 커틀러 미측 대표는 “워싱턴에 가게 되면 의회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한국이 내놓은 제안들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무역구제 분야에 대해)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않았고 일괄적으로 제안을 모두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묻는 형태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일부 수용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김종훈 우리 측 대표 역시 “미국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고 예의주시하겠다”며 “협상 중단은 우리의 입장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며 FTA 협상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쟁점에 대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상품분과 등 다른 파트에서 이번 5차 협상에서 한미 양측이 의견을 좁혀가고 있는 것도 ‘빅딜’을 위한 잔가지 처리 수순으로 해석되고 있다. 5차 협상의 쟁점으로 남은 쇠고기 관세 철폐, 무역구제, 의약품, 자동차세제 등은 실무선에서 해결하기 힘든 것들이다. 양측은 사실 5차 협상에서 민감한 분야에서 진전이 있기를 혹시나 기대했을 뿐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5차 협상 시작에 앞서 지난 3일부터 일주일간 일정으로 워싱턴에 머물면서 USTR 대표는 물론 미 의원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 ◇한국은 무역구제, 미국은 쇠고기ㆍ자동차=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뭘 받고 뭘 주냐’로 귀결된다. 우리는 무역구제 제도 개선에 사실상 ‘올인’을 선언했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제도를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한 데 따른 것으로 81년부터 2005년까지 25년간 우리나라 대미 수출의 6.8%인 373억달러 상당의 물품이 반덤핑과 상계관세 등 규제를 받았다. 김 대표는 미국이 무역구제 제도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우리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예단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우리로서는 FTA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무역구제 제도 개선을 얻어내지 못하면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다. 우리 측 무역구제 제도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미국은 쇠고기 즉시 관세 철폐 혹은 빠른 관세 인하와 자동차세제 개편 등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의약품도 미측의 주요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합의가 되는 대로 관련 법에 반영하겠다고 공식 언급한 상황이어서 서두를 가능성은 낮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농업 부분과 자동차 파트에서 우리가 적지않은 것을 양보하지 않겠느냐”며 “미국 역시 한국이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해야 5가지 무역구제 제도 개선 항목 중 일부라도 수용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