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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적합업종 때문에 공공기관 급식과 면세점 시장에서 대기업이 퇴출된 자리에 외국계 기업만 배를 불리고 있다"
지난 1년여 넘게 재계와 학계 등에서 끊임없이 제기해온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폐해 중 하나가 바로 공공기관 급식과 면세점 부문에서의 외국계 잠식이다. 특히 재계 등은 LED조명·재생타이어·외식업 등과 함께 공공기관 급식, 면세점을 패키지로 묶어 적합업종이라는 잘못된 대기업 규제 때문에 중소기업이 아닌 외국기업이 한국 시장을 빼앗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같은 재계의 전방위 공세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혁파' 드라이브에 편승, 비슷한 주장이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공공기관 급식 제한과 면세점 배제는 적합업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행정조치라는 걸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처럼 잘못된 주장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데는 우선 재계와 일부 학자들의 의도적 왜곡 탓이 크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등 해당 부처 역시 사실과 전혀 다른 지적이 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이를 반박하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기재부나 관세청 등 관련기관도 문제가 불거진뒤 한참 후에 대응에 나서 조용히 관련 제도를 바꾸는 데 그쳤다"며 "바로바로 왜곡된 여론을 바로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합업종 둔갑한 공공기관 급식·면세점=공공기관 구내식당 급식과 공항 면세점 사업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 공공기관 급식은 말 그대로 해당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은 적합업종 지정이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지난 2012년 3월에 내놓은 '공공기관 구내식당 중소 급식업체 참여 확대 지침' 때문이다.
애초에 기재부는 중견·중소기업에 더 많은 공공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자 대기업 참여 금지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외국계기업 아라코가 중견기업이라는 이유로 납품처를 4개에서 13개로 늘리자 외국계 잠식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 이때부터 아라코의 잇단 급식 낙찰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때문이라는 재계와 학계 일각의 잘못된 목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면세점 사업 역시 관세청 소관으로 적합업종과 전혀 상관이 없다. 외국계 확대 논란은 지난해 10월 김해공항 면세점 사업자로 외국계 중견기업인 듀프리토마스줄리아코리아가 최종 낙찰된 것에서 비롯됐다. 듀프리코리아의 모회사 듀프리는 세계 2위의 외국계 면세점으로 2012년 매출액이 40억달러에 이르는 스위스 기업이다.
◇향후 외국 대기업 참여 못해=급식과 관련, 글로벌 대기업 아라코는 지금까지 국내 규정상 중견기업인 까닭에 아무런 제재 없이 공공기관 구내식당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는 7월 중견기업 특별법 시행령이 발효되면 외국계 대기업은 중견기업에서 제외돼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공항 면세점 역시 논란이 일자 관세청은 올초 관세법 시행령을 개정, 면세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중견기업 사업자 범위를 조정했다. 이에 따라 면세점 사업자가 될 수 있는 중견기업은 '3년 평균매출액 5,000억원 미만이고 자산총액 1조원 미만인 기업으로서,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인 법인이 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100분 30 이상을 소유하는 최대출자자인 기업이 아닌 기업'으로 정했다. 즉, 듀프리 등 외국 대기업은 들어올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 데도 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비슷한 주장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잘못된 주장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데는 정부나 관련기관의 무관심과 소극적 대응 탓이 크다. 이미 지난해부터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 공공연히 공공기관 급식과 면세점 등을 적합업종과 연결시켜왔으나, 관련부처의 바로잡기 노력은 크게 부족한 게 사실이다. 실제 기재부와 관세청 관계자는 "따로 (공공기관 급식업과 면세점업이 적합업종이라는 주장에 대해) 해명을 한 적이 없다"며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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