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만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내놓은 보고서에서 “일부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4%를 초과하거나 연체 대출규모가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하고 있다”며 ‘가계대출발(發) 위기’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다. 강 연구위원이 경고했듯 중소기업과 가계 부문의 대출만기에 따른 부담은 새해 초부터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다. 경제상황이 올 상반기 바닥을 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금융권의 보신주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이다. 1년 이상 진행된 부동산시장의 위축이 심화하면서 가계 부문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중소기업은 내수침체가 심화하면서 연체율이 올라가는 ‘이중고’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잠정 파악한 국내 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50조원. 이중 180조원 규모가 1년 내 만기 도래한다. 이중 118조원이 오는 9월 안에, 80조원 안팎이 상반기 안에 만기 도래한다. 가계 부문은 전체 266조원의 잔액 가운데 135조원이 연내 만기 도래하는데 이중 9월 안에 돌아오는 게 103조2,000억원, 상반기 안에 도래하는 게 60조~70조원 규모다. 전체적으로 150조원 규모의 중기ㆍ가계 여신 만기가 상반기에 집중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여신의 만기구조가 경제 전체의 순환구조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가계여신의 경우 지난 2002년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3년 만기 대출의 상환기일이 올해 대거 돌아온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생기면서 주택담보설정비율(LTV)을 최대 80% 이상까지 올리기도 했다. 2003년 하반기부터 주택가액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가계들은 주택 값 하락에 따른 부담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안게 됐다. 부동산정보업체들에 따르면 아파트 값은 올해에도 최소 한자릿수 비율의 추가 하락이 예고되고 있다. 강 연구위원은 “경기침체로 인한 원리금 연체와 담보주택의 경매처분 증가가 경기회복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이 대손충당금 설정비율을 고려해 만기 때 추가 담보를 요청하거나 원금상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경우 대출자 입장에서는 주택을 헐값에라도 팔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간부는 “설사 만기를 연장해준다고 해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며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품붕괴→금융기관 여신 부실화→기존 여신 상환 및 신규대출 억제’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해 7월 이후 정부가 잇따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았지만 일선 금융기관에 투영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은 지난해 11월 한달 동안 1조4,000억원이 줄었고 특히 소호업자들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입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2.3%에 불과했던 연체율은 연말 2.9%까지 급상승하고 대출 금융기관의 부실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주로 거래하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까지 유탄이 가해지고 있다. A은행 임원은 “경기침체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해 보수적인 대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가능한 신규대출은 줄이고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을 꺼리는 동시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여신심사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은 연체율 감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기존의 단기대출을 장기로 전환하고 감독당국은 경기국면, 담보물의 환가성 및 기업규모에 따라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차등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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