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고대 세계 최강국이던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탐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최근 이건희 회장이 그룹 내 부정부패를 질타하며 비리와 실적부진 등을 이유로 일부 사장급 인사를 단행한 것과 맞물려 삼성의 위기의식과 극복의지를 다시 한번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20일 삼성에 따르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계열사 사장 40여명은 이날 오전 삼성전자 본관에 모여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의 '로마는 왜 쇠퇴했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경청했다. 이 자리에서 사장단은 세계를 제패하며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로마제국이 어떻게 붕괴의 길로 들어섰는지를 소상히 들으며 꼼꼼히 메모하는 등 강의에 몰입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강연은 지난달 초 이 회장이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언명한 후 전 그룹 차원에서 쇄신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마련된 것이어서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현재 삼성의 총 매출액은 국내총생산(명목GDP)의 2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독보적이다. 특히 삼성 계열사를 보면 반도체ㆍLCD 등에서 글로벌 1위로 우뚝 선 삼성전자를 비롯, 삼성생명ㆍ삼성증권 등 국내 1위 기업들이 즐비하다. 더 이상 벤치마킹할 글로벌 1위 기업이 없는 수위 업체로 자리잡으면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된 것. 마치 1,500년 전 로마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ㆍ중동 지역까지 아우르며 대제국을 건설해 정점에 올라선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삼성이 요즘 겪고 있는 위기국면 역시 로마 쇠퇴의 전조와 비슷해 이 사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시각도 이번 강연이 이뤄진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낸드플래시 1위였던 삼성전자는 2위 도시바의 추격으로 추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일격으로 휴대폰 부문 역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이 "1등이라고 자만하면 10년 내 삼성 제품이 다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다. 이에 더해 최근 들어서는 삼성테크윈의 부정과 리콜 사태, 신제품 하우젠 스마트 에어컨 오작동과 6만여대의 사전점검, 옴니아폰2 품질 시비 등 잇따라 터져나왔다. 이 때문에 비대해진 회사 조직과 자만심, 매너리즘, 도덕적 해이 등이 겹쳐 과거 '관리의 삼성'의 정신과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자 승지원 경영을 하던 이 회장은 직접 주 2회 서초사옥으로 출근, 삼성 경영 전반을 일일이 챙기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 여름에 휴가 대신 계속 출근을 하며 삼성 혁신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이 회장이 앞장서 벌이고 있는 쇄신과 함께 이번 강연이 삼성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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