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서모씨는 최근 거래하던 자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년 전 가입한 자문형 랩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재계약(연장)할 경우 수수료를 면제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1억원을 투자한 서씨의 1년 수익률은 -17%. 새 상품에 가입할 경우 다시 수수료를 내야 하고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한 서씨는 고민 끝에 계약을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수익률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자문사들이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수수료 세일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재계약 고객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투자자문 업계 1위인 브레인은 기존에 1.5%대로 받았던 고객 대상의 일임 상품 선취 수수료율을 최근 절반 이상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후 미흡한 시장 대응으로 일임 상품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데다 자문형 랩 수익률까지 고전을 면하지 못하면서 자금 이탈이 심화되자 수수료 인하 카드로 고객 회유에 나선 것이다.
한국창의도 기존 고객에 한해 선취 방식으로 받던 일임 상품 수수료를 후취로 바꿨다. 통상 자문사 일임 상품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게 되는데 재계약을 앞둔 현 시점에서 수익률이 좋지 않다 보니 계약 초 수수료를 떼지 않고 대신 1년 후 성과보수와 함께 수수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한국창의는 또 수수료의 후취 전환과 함께 기본 수수료 기준도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 인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부 중소형 자문사들이 수수료를 아예 안 받고 1년 후 성공보수만 받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다급하기는 증권사도 마찬가지. 일부 증권사는 손실이 큰 고객을 대상으로 수수료 면제를 제시하며 계약 연장을 제안하고 나섰다. 통상 증권사를 통해 판매되는 자문형 랩은 성과보수가 없고 수수료 수익의 약 20%를 자문사가, 나머지를 증권사가 가져가는 구조다. 그러나 증권사 자문형 랩 잔액이 지난해 5월 말 9조원대에서 지난 4월 말 기준 5조원대까지 고꾸라지면서 증권사도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수수료 인하 또는 면제 움직임은 증시 부진으로 수익률이 악화되면서 수탁액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임 상품은 물론 자문사의 큰 먹거리 중 하나인 자문형 랩 상품도 지난해 8월 급락장 이후 실망스러운 성적을 이어가고 있어 현재 자문사에는 ‘신규 자금 유치’보다 ‘기존 자금 유지’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며 “손실 고객들의 재계약을 위해 수수료 인하나 성공보수 기준 완화의 회유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도 “자문형 랩이 인기를 끌던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시장 주도권을 위해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이기까지 했는데 1년도 안돼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수수료 인하∙면제가 잇따르고 있다”며 “상품 인기만 좇아 경쟁적으로 시장 확대만 꾀한 업계의 반성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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