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몰래 시도했다 허망하게 끝났다
[금융중산층을 키우자] 자산관리 틀을 바꿔라 ② 개별에서 통합으로상품-자문 서비스 통합망 구축, 자산관리 사각지대 없애야금융서비스 고액 자산가 집중… 10명중 8명 재무상담 못받아CMA-자문 연계서비스 개발… 자산관리 중산층까지 확대를
안현덕기자 always@sed.co.kr
#서울에 사는 회사원 한모(40)씨는 얼마 전 아내 몰래 관리해오던 1억여원의 비자금을 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뒀다. 그리고 곧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이렇게 운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연락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 돈을 CMA에서 다시 빼낼 때까지 그는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한씨는 "6개월 동안 1억원의 자금을 넣어두면 증권사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소개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고객의 자금을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주부 김혜정(가명ㆍ35)씨는 올 초 고민에 빠졌다. 지난 3년간 투자한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며 4,000만원의 목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작 투자할 여력이 생겼지만 투자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찾은 객장에서도 별다른 해법을 얻지 못했다. 그는 주식이나 펀드에 재투자하려니 손실이 두렵고 다른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 상담조차 어려워 결국 기존 거래은행 계좌에 자금을 맡겼다.
최근 금융서비스의 고액자산가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금융중산층들이 자산관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고액자산가들은 증권사 전문가들을 통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자산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중산층들은 개별 상품에 대한 자문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자산의 집중을 막기 위해서라도 CMA와 자산관리의 연계서비스를 개발하고 중산층을 위한 금융상품-자문서비스의 통합망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현재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증시 주변을 맴도는 투자자 예탁금과 CMA 잔액은 55조7,867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6년(15조587억원) 이후 6년 만에 3배 이상 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CMA 규모가 6년간 20배나 늘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통합자산관리에서 소외되면서 이렇다 할 자산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투자시장에서 제대로 된 재무상담을 받은 투자자는 열 명 중 두 명꼴에 그치고 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지난해 만 25~64세의 성인 남녀 2,5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재무상담 경험이 없다고 답한 투자자는 78.3%에 달했다. 투자를 위한 교육도 턱없이 부족해 응답자 가운데 12.0%만이 "투자자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금융투자회사에 대한 이미지도 '자사 이익을 더 생각한다(89.9%)'로 굳어진 지 오래다.
반면 고액자산가를 위한 통합자산서비스는 급속히 발전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모 증권사는 최근 고액자산가를 위한 통합투자관리형 랩서비스를 출시했고 이달 초에는 1억원 이상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프라이빗뱅커(PB)까지 곁들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자산관리의 양극화가 이뤄지자 전문가들 사이에 통합형 자산관리의 폭을 중산층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CMA와 자산관리의 연계서비스다. 모든 고객들에게 은행처럼 CMA를 자동으로 개설하도록 한 후 그들에게 자문서비스를 옵션으로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CMA가 자산관리의 게이트웨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자산관리 연계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원하는 고객에게 신탁과 랩어카운트ㆍ퇴직연금 등의 자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또 영국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 금융자문-상품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멘토링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영국은 2008년 7월 정부 차원에서 무료 범용 자문서비스 제공을 주된 내용으로 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지난해부터 머니 어드바이스 서비스(Money Advice Service)에서 범용 금융자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박영석 서강대 교수는 "중간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정보 제공 채널이나 서비스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충분한 인력을 확보해 금융문제 해결 노하우를 공유하는 한편 예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연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어 "외국의 경우 정부 주도하에 금융소비자의 전반적인 금융환경 변화에 맞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는 중산층 등 서민금융 관련 기본소양을 향상시키는 한편 전체적인 분배구조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금융투자 업계는 참여를 통해 사회적 책임 역할을 할 수 있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산관리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 확보도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자산관리서비스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PB급 고급 인력을 충분히 양성해야 한다"며 "증권사들은 이를 통해 PB서비스 비용을 다소 낮춰 대중화에 나서는 한편 여러 상품의 최소 투자금액도 한 단계 낮춰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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