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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당국이 증권거래세 인하란 카드를 꺼낸 것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국내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이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금융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단 환영하면서도 실제로 정책으로 연결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 원장은 20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투자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증권거래세를 한 단계 낮추는 방안을 주관 부처인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할 계획”이라며 “신용융자나 콜 차입 등 규제도 한층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의 이러한 행보는 유럽 재정위기 등 불확실성 심화로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는 투자자들이 크게 증가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의 매출이 급감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월 초 11억3,764만주에 달하던 국내 증시 거래량은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가시화되면서 6월 8억2,761만주까지 떨어진 바 있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업계 내에선 “전체 증권사 가운데 30% 가량이 올해 적자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말마저 돌고 있다.
여기에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가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다시 논의되며 국내 증시가 새로운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는 부분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지난 17일 상장지수펀드(ETF)와 파생상품에 각각 0.5%, 0.01%의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증권거래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다뤄졌던 것보다 강화된 것으로 당시에는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하되 시행 첫 3년간 세율 0%, 4년 후부터 0.001% 과세한 뒤 단계적으로 0.01%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에서 거래량 증가를 위한 방안으로 증권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됐다”며 “아직 확실히 시행될지 알 수는 없으나 증권거래세가 인하된다면 증시는 물론 금융투자업계에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투자업계 내에서는 증권거래세가 실제로 내려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 당국이 세수 확장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거래세만 인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해당 부처나 각 정당간 의견이 크게 엇갈릴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로 제기됐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금껏 잠자고 있던 주식 거래에 따른 자본이득세 부과 문제가 증권거래세 인하로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증시 활황을 위한 카드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증권거래세를 인하하거나 없앨 경우 자연히 다시 이야기 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자본이득세 부과”라며 “이미 과거에도 자본이득세를 부과해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오간 상황이라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도 국회 일각에서는 자본이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로 증권거래세가 인하된다면 한 측에서는 대신 자본이득세를 부과해 세수 기준을 맞추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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