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FTA ‘공식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잇단 외부비난과 내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 부처를 대신해 FTA 홍보기관 역할을 사실상 떠맡다 보니 일개 연구소가 FTA 논쟁의 최전선에서 비난과 수모를 다 겪게 된 셈. KIEP는 지난 1월과 3월 각각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발표하면서 불과 1개여월 만에 경제효과를 과다 포장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장난 수준의 통계조작을 일삼는다”(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는 비난에서부터 “통상교섭본부로부터 자료를 받아 대미무역수지 전망치를 축소, 조작했다”(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는 의혹까지 나온 상태다. FTA 연구를 진행하면서 ‘윗분의 눈치’를 보느라 생긴 해프닝도 다수다. 한 관계자는 “몇 달 전 FTA 관련 통계수치를 내놓으려다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오늘 언론에 발표할 내용과 수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관련수치를 바꾸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FTA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멘트가 기사화되면 외교통상부 등에서 직접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에게 말해준 모든 내용을 다 작성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FTA에 대한 비판적인 보고서를 미리 ‘커트(cut)’하지 못해 “KIEP마저 FTA에서 고개를 돌렸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팀장 및 연구위원급들이 FTA 효과 알리기에 열을 올리는 사이 일부 석사급 연구원들이 “ 멕시코처럼 미국에 대한 산업별 동조화가 커진다“(3월15일) “FTA로 수출상품의 시장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보장은 없다”(4월10일)는 보고서를 잇달아 냈기 때문. 관련보도가 줄을 잇자 KIEP는 11일 “월간 세계경제 4월호에 실을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잘못 올렸다”는 이유로 해당 보고서를 급히 삭제하는 소동을 벌였다. KIEP의 한 관계자는 “통계수치 하나를 발표할 때도 청와대나 외교부는 물론 재정경제부ㆍ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인문연구회 등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이들 입맛을 모두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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