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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 아름다운 이유] 역사와 전설
입력1998-11-20 00:00:00
수정
1998.11.20 00:00:00
【금강산=허두영 기자】 금강산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몸뚱이인 화강암에 배달민족의 역사와 전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금강산의 가장 비장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울분을 삭인 흔적은 금강산 곳곳에 남아 있다.
태자성은 태자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힘을 길렀던 곳이다. 여기에는 태자가 직접 쌓았다는 축대와 성터가 남아 있고 타고 다니던 용마를 매어 두던 계마석이 있다. 망군대는 마의태자가 군사를 시켜 망을 보던 곳이다. 마의태자릉은 마의초식(麻衣草食)하던 태자가 결국 재기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해 죽기 직전 비로봉에 올라 하늘을 원망하다 내려와 묻힌 무덤이다. 용마는 무덤 바로 옆에 선 채 돌이 되어 죽어서도 주인을 지키고 있다.
고려를 창건한 태조는 금강산의 넓은 도량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태조는 마의태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을 찾았는데 갑자기 멀리서 법기보살이 일만이천봉을 배경으로 빛을 발하며 나타나자 황급히 엎드려 절을 했다.
법기보살이 나타난 곳이 법기봉의 방광대로, 태조가 절을 한 고개가 배재령, 절을 한 바위가 배석 또는 배점이다.
금강산에는 스님들이 불력(佛力)을 겨룬 두 가지 사건이 전해 온다. 나옹조사와 금동거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불력 대결이다.
장안사의 나옹조사와 표훈사의 금동거사는 지는 쪽이 금강산을 떠나기로 하고, 바위에 불상을 새기는 내기를 했다. 나옹조사는 바위 앞에 미륵·석가·아미타불을 새겼고, 금동거사는 바위 뒤에 60개의 작은 보살을 새겼다.
이것이 삼불암이다. 내기에 진 금동거사는 바로 옆에 있는 연못에 뛰어 들었고, 뒤따라온 세 아들도 울다가 연못에 빠져 죽었다. 이 연못은 그 물소리가 삼형제의 슬픈 울음소리 같아 「울소」(鳴淵)라 불린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와 불력을 겨루기 위해 금강산을 찾았다. 사명대사가 새를 한 마리 붙잡아 『이 새는 살겠습니까, 죽겠습니까』고 묻자, 서산대사는 문턱에서 『내가 나가겠습니까, 들어가겠습니까』고 반문했다.
백화암은 서산대사 비석이 있고, 사명대사처럼 임진왜란에서 승병을 일으킨 고승들의 진영을 모신 수충영각이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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