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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판단 기준만든다] 不實경영 소송ㆍ고발 요건, 사회적 공감대 찾기
입력2003-07-17 00:00:00
수정
2003.07.17 00:00:00
이연선 기자
경영진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매 순간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회사이익에 최선인 선택을 해야 하지만 법은 물론 국민적 정서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자 개인의 이익과 상치되는 경우도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 투입을 근거로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와 관련 부실책임기업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시민단체가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한 경영의 책임을 물어 경영자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면서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그 결정이 신중하게 내려진 것이라면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일컫는다. 경영자의 판단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성실한 판단까지 문제 삼는다면 결정적인 순간 과감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모든 경영판단이 보호 받는 것은 아니다. 김건식 서울대 법대교수에 따르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검토한 후 내린 결정일 것
▲이사와 회사사이에 이익충돌이 없을 것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고려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판단일 것 등의 조건이 붙는다. 현재 상법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부담하도록 해 비슷한 장치를 마련해 뒀다.
◇첫 판례, 제일은행 소액주주 소송=지난 98년 7월 24일 서울지방법원 민사 17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소액주주들이 회사 경영진의 부실경영에 따른 책임을 물은 주주대표소송에서 참여연대(소액주주) 편의 손을 들어줬다. 그 때까지만 해도 상법상의 대표소송제도는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한보철강에 대한 부당한 대출을 대가로 제일은행 임원진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긴 것을 인정했다. 이 판결로 부실경영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경영진의 위법행위에 대해 형사적 책임추궁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책임추궁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와 반대로 경영진에 무리하게 책임을 묻는 판례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김진만 전 한빛은행장이 지난 5월 30일 우리은행이 낸 부실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서울지방법원은 김 전 행장이 재직 당시 주식처분시점을 놓쳐 은행에 손실을 끼쳤지만 이는 증권업무지침에 근거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우리은행은 항소를 포기했다. 판결이 나오자 공적자금 회수과정에서 예보가 은행 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상 판단`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경영판단을 존중하는 미국=미국의 경우 19세기 초반부터 관련 판례가 쌓이면서 경영판단에 대한 패턴이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우리나라가 IMF 이후부터 5년 남짓 소송을 진행하면서 아직 1, 2심을 거치고 있는 소송이 마무리되길 기다리는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일이다. 미국에선 다양한 사례가 경영자들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 합병에 대해 이사회의 결정이 문제가 돼 주주나 채권자가 기업매입 비용이 지나치게 비쌌다고 소송을 걸었다면 충분한 정보습득 노력을 기울였는지, 개인적 이익에 따르진 않았는지가 검토된다. 판결에 따라 합병을 준비하던 경영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엔론 사의 회계부정사건 역시 회사가치보다 개인이익을 단기간에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를 한 것이 문제가 돼 교훈을 남긴 경우다.
미국은 주주자본주의 원칙이 확립된 만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은 2차적인 문제다. 우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당연한 책무로 여겨지는 풍토 때문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경영자의 판단을 문제 삼아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된 경우가 거의 없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양측이 합의 하에 소를 취하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세우기 어려운 조건을 가진 국가로 분류된다.
◇투명경영 정착 되는 기회로 삼아야=IMF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주주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이사회의 역할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사외이사는 회사에 대해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게 됐고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은 업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이런 시점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경영자의 판단이 어느 선까지 면책되는 지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달리 경영상 판단이 `도의적 책임`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영자의 판단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배째라(BJR)`로 나오는 경영자에겐 경영판단의 원칙(BJR)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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