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에는 '권력'과 '자리'라는 추상적이면서도, 엄중한 시대의 물줄기가 흐른다. 때로는 그들의 영역 속에서 짬짜미를 통해'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은밀한 고리로 하나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불가피한 요체다.
인맥의 줄기는 사실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에서든 존재한다. 가장 선진국 형태를 갖췄다는미국 조차도 끈끈한 인맥을 통해 거대한 국가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친위 부대 격인'아칸소 사단', 오바마 현 대통령의 '시카고 사단'이 바로 그것이다. 하물며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기도 했다.
중국은 더하다. 오죽하면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관시(關係ㆍ연줄)이겠는가.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인맥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대기업 임원이 된 A씨는 임원 승진을 하면서 회사로부터 "자신이 아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써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의 개인적인 능력뿐 아니라, 그의 인맥도 능력의 일부며 회사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위 임원들의 그림이 상당수 변한다. 권력의 핵심자가 나온 학교와 지역을 찾고, 이들과 힘이 닿을 만한 사람을 조직 내에서 찾기 부산하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대선(大選)은 나라의 인맥을 송두리째 바꾸는 분기점이 된다. 참여정부 당시에 인사업무를 책임졌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정할 수 있는 자리가 2만개에 이른다"고 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하나 같이 자리를 챙기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몇몇의 친위 부대에 의해 사슬처럼 분화하고, 그 속에 결정적인 양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고향이요, 학교요, 종교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인맥=신뢰'의 등식이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통치와 경영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김동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언론에서 인맥 관련 기사를 다루고, 인맥을 파헤치는 책들이 나오는 이유는 중요 인물들의 인맥이 정치ㆍ사회ㆍ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라고 했다. 한국 사회는 인맥이라는 힘의 요체가 너무나 과하게 사회를 비튼다. 인맥은 때로 특정 군단에 힘의 쏠림을 유발하고, '부(富)의 귀착'과 '힘의 쏠림'을 만들어 낸다. 지도층일수록 인맥자원이 풍부하고 이에 대한 활용도가 높은 탓이다.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인맥 형성과 활용에 있어서도 사회 상층부와 하층부의 불평등 현상이 발생한다"며 "사회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 엘리트들은 인맥 동원 능력이 뛰어나며 동시에 그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상층부를 차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인맥은 한편으로 부패의 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인맥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네트워킹'이라며 인맥 쌓기에 열중하면서도, 사회적 차원으로 넘어가 인맥을 논할 때는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다.
사회 지도층에서 학연, 혈연, 지연과 같은 인맥을 동원해 저질렀던 불법행위들이 단골 문제가 됐던 것이 국민의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포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인맥은 결국 신뢰를 통해 한 집단, 나아가 국가를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면서도, 사회를 부패와 불평등으로 몰고 가는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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