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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과 무학대사
입력1999-04-14 00:00:00
수정
1999.04.14 00:00:00
왕십리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무학대사의 일화로 전해진다.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지금의 남산 끝자락에 터를 잡고 궁궐을 짓는데 조금쌓기만 하면 무너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지금의 왕십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노인이 논을 갈며 『무학이 같이 미련한 소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 까닭을 물으니 『서울은 학의 둥지와 움직이지 않아 도성이 완성될 수 있으므로 동북방으로 왕(往)10리(十里)를 하면 명당 자리가 있을 것이요』하는 노인의 말을 듣고 북한산 아래 현재의 경복궁 자리에 도읍을 정한 곳이 바로 조선왕조 500년 흥망성쇠를 함께한 서울이다.지난해 왕십리 로터리에 소월시비를 건립하고 주변에 작은 쉼터를 마련했다. 비가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김소월 왕십리중에서). 1930년대 소월 선생께서 왕십리의 어느 초옥의 처마에서 왕십리의 정경을 우수어린 애틋한 심정으로 묘사한 시다. 문인들은 사라져도 그들의 작품은 남아 두고두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리고 그 추모의 마음들이 모여 세워진 것이 문학비다. 무형으로 우리들의 귓전을 두들기던 시가 유형화된 형태로 만들어진 시비는 거리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형의 위안을 주고 그것은 유형의 활력으로 발전할 것이다.
高在得서울성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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