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식 나열’. 중요도를 따지지 않은 채 중구난방으로 죽 늘어놓는 걸 일컫는 말이다. 사실은 틀린 말이다. 백화점만큼 장사가 될 상품을 가장 잘 팔릴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코미디, 조폭물, 가족애 등 흥행이 될만한 요소를 ‘백화점식’으로만 ‘나열’한다면 관객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역전의 명수’는 그래서 안쓰럽기 그지없는 영화다. 이런저런 장르를 늘어놓기만 한 이 작품은 기본적인 상황 설정부터 앞뒤가 안 맞으면서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부족과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의 남발로 관객들의 실소만 끌어낸다. 영화의 배경은 전북 군산. 고교야구 전성시대 진짜 ‘역전의 명수’였던 군산상고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역 앞에서 국밥을 나르는 명수(정준호)에겐 2분 17초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 현수(정준호)가 있다. 동네 양아치 건달인 명수와 달리 현수는 서울법대를 무려 수석으로 입학하는 수재. 그런 동생을 위해 엄마(박정수)는 명수에게 동생의 뒤치다꺼리를 강요한다. 명수는 현수 대신 군대도 가고 여자 문제도 해결해준다. 그 때 현수에게 차인 오순희(윤소이)는 복수를 결심하고 명수에게 접근한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을 골라내라면 한도 끝도 없다. 명수가 동생 대신 군대에 있는 사이에 현수가 떡 하니 사법고시에 붙고(해병대 병장이 고시 수석을?),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가문얘기를 들먹이기만 한다(영화 ‘가문의 영광’ 패러디?). 무식한 명수의 은행강도 행각이 순식간에 ‘의적질’이 되고, 돈 많은 아내를 둔 변호사 현수가 비열한 ‘공공의 적’으로 설정된 상황 자체가 영화의 안일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에 타 죽은 애인과 영혼결혼식을 하자는 명수의 굳은 표정에 이르면 관객들의 실망은 허탈함으로 변한다. 쌍둥이 형제로 1인 2역을 맡은 정준호의 어설픈 연기는 영화의 마이너스 요인. 1인 2역이란 거창함에 걸맞지 않게 그는 명수를 연기할때나 현수로 분할 때나 똑 같은 눈빛에 같은 표정만을 짓고 있다. 박정수, 임현식 등 안방 극장을 휘어잡던 감초 조연들 역시 웬 일인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돼 버렸다. 너무 많은 상황에 너무 많은 인물. 122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은 너무도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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