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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금붕어
입력2002-08-15 00:00:00
수정
2002.08.15 00:00:00
'우리는 어항 속 금붕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얼마 전 실적에 급급해 눈 가리고 아웅식 보고를 관행적으로 지속한 지점장들을 질타하며 한 말이다. 요컨대 아무리 몸을 숨겨봤자 다 드러나니까 편법에 기대지 말고 원칙대로 정정당당하게 일하라는 얘기다.
백번천번 옳은 말이다.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다'고 했다. 더욱이 지금은 사람과 사람, 일과 일이 씨줄ㆍ날줄로 어지럽게 얽혀 있는 네트워크의 시대가 아닌가.
연관되는 사람들이 많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은 어항 속 금붕어의 몸짓처럼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아직도 스스로가 '금붕어'란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 '원칙의 훼손' 심각한 수준
지지부진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중국과의 마늘협상 후유증, 공적자금 회수논란, 전직 금융인들에 들이대는 엄격한 배상책임 잣대, 그리고 어느새 탄력을 잃어버린 금융ㆍ산업구조조정 등등..
언뜻 이 사안들은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생존권' '집단이기' '책임회피' 등 공통분모를 이루는 어휘들이 결국은 '원칙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이런저런 눈치를 살피느라 결국은 논란만 더 키우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 외양만 달리할 뿐 속내는 똑같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만족스럽게 반영한다는 것은 애당초 낙타더러 바늘귀를 통과하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일정한 선을 타협점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피해나 손해를 보는 일방에 대한 대책마련이 선행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 틀 안에서 갈등조정 역할을 맡아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지기가 두려워, 또 표를 의식하느라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다자간 자유무역을 부르짖으면서도 안으로는 보호주의와 쌍무협정에 기대어 자국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다.
140여개에 이르는 FTA가 단적인 예다. 하지만 교역규모 12위인 우리나라는 아직 단 하나의 협정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칠레와 FTA를 추진해왔으나 사과ㆍ배ㆍ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민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아직 지지부진하다. 한미간 투자협정(BIT)도 영화계의 반발에 꽉 막혀 제자리걸음이다.
▲ 무소신, 또 다른 '면피'로 이어져
정부ㆍ정치권의 무원칙ㆍ무소신은 정권 말 레임덕과 맞물려 통제(?)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5, 6년 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개인으로서는 시쳇말로 '죽었다 깨어나도 ' 갚을 수 없는 금액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소송들을 줄줄이 제기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실제로 그들이 이만한 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보는지 의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야말로 또 다른 '면피'에 다름 아니다.
회삿돈을 빼돌렸거나 명백한 경영상 오류에 대해서는 당연히 시간에 관계없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아닌 부분은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누가 제대로 일하려 하겠는가.
"정권이 바뀌면 청문회에 불려나갈까 두렵다"고 우스개 말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않다.
농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공공선에 기초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면 설사 그런 상황이 올지라도 얼마든지 떳떳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결국 '역사라는 어항'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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