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고정금리 상품은 시장금리를 즉각 반영하는 변동금리 상품보다 금리가 더 높다. 향후 일정 기간 금리의 변동 위험을 떠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금리 상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5년간 고정금리를 유지하다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변동금리 주담대 금리보다 더 저렴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계대출 안정화 차원에서 주담대 가운데 고정금리 상품의 판매비중을 높이라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은행들이 부응하면서 빚어지고 있는 결과다. 당국의 규제가 불러온 '금리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5년제 고정금리 혼합형 주담대의 평균 금리는 3.58~3.6%로 변동금리형 주담대 금리(3.78~3.8%) 대비 0.2%포인트 싼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14일 5년제 상품의 기본금리를 1.28%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일주일 뒤인 21일 또다시 0.05% 내린 데 따른 것이다.
5년제 금리는 3년제 고정금리형 주담대의 평균 대출금리 4.14%보다도 0.5%포인트 더 싸다.
통상 주담대의 대출 재원은 은행채 발행을 통해 조달되는데 3년물보다 5년물 금리가 0.3~0.5%포인트가량 더 높다. 5년물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더 비싸다는 뜻이다. 그런데 5년제 고정금리형 상품의 대출금리가 3년제보다 더 싸고 심지어 시장금리를 월마다 반영하는 변동금리 상품의 대출금리보다 더 낮은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고정금리 대출확대 정책이 자리한다.
당국은 올해까지 고정금리 주담대의 비중을 전체 대출의 20%, 오는 2016년까지 30%, 2017년에는 40%까지 맞추라는 타임스케줄을 제시했다. 현재 은행들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평균 13~15%에 불과하다.
당장 올해만 해도 5~7%포인트가량 끌어올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간 고객들은 변동금리형 상품만 찾았다. 금리가 고정금리형보다 0.5%~1%포인트 저렴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혼합형을 원하는 고객들도 5년제보다는 금리가 더 싼 3년제를 선호했다.
이런 현상이 최근 한 달 새 은행들이 혼합형 상품의 대출을 줄기차게 내리면서 깨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은행들은 같은 혼합형 상품이라도 3년제보다는 5년제를 더 팔아야 할 입장이다. 3년제의 경우 고정금리 인정 비율이 전체 대출금의 30%에 불과하지만 5년제 상품은 50%가 잡힌다. 더구나 당국은 오는 2ㆍ4분기 이를 75%까지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더더욱 그렇다.
국민은행은 5년제 고정금리 혼합형 상품의 금리를 크게 내리면서 판매한도를 3조4,000억원으로 잡았는데 한 달 새 8,000억원가량을 팔았다.
다른 은행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국민은행을 빼면 아직은 변동금리 상품의 대출금리가 더 싸지만 규제도 맞춰야 하고 국민은행에 고객도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은행을 따라 하자니 역마진도 신경 쓰인다.
이런 금리 역전현상이 은행 수익성에 큰 무리는 주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변동금리의 경우 시장금리를 바로 반영하다 보니 단기적으로 더 내려갔을 수 있고 증시부진 등으로 시중의 부동자금이 은행으로 몰려 조달금리 부담도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 근거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박사는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운용에 부담이 클 수 있다"며 "대출금리가 낮아져 연쇄적으로 예금금리가 더 내려갈 여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