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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5대그룹 힘겨루기 끝났나

최근 정부와 5대그룹간의 관계가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신정부 출범이후의 반목 기조에서 벗어나 아직 밀월관계는 아니지만 풍랑속에서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란 인식아래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는 제한적 협조관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정부가 밝힌 5대그룹 주력계열사에 대한 출자전환, 상호지보 해소방안 등 정부와 재계가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구조조정 방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재벌에 대한 특혜시비 등 정치적인 부담을 짊어져야 하고, 재벌들도 경영권의 일부 양여, 지보해소에 따른 추가 비용부담 등 적지않은 댓가가 예상되는 방안인 데도 용케 협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는 재벌그룹에 경영권을 인정하면서 은행의 출자전환을 통해 빚을 없애주고 별다른 댓가없이 상호지보를 끊어 재벌을 봐준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반대로 재벌그룹은 일단 경영권을 인정한다지만 채권은행단의 간섭을 피할 수 없고 그대로 둘 경우 당분간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호지보 해소를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이번 방안에 대해 전경련은 지금까지의 입장을 고집하며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하는 자료를 내놓는등 거부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진짜 속내는 다르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언(傳言)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요즘 5대그룹의 구조개혁과 관련해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12월까지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같은 자신감의 배경으로 재계의 태도 변화를 꼽고 있다. 출자전환과 과감한 상호지보 해소방안은 모그룹 총수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며 정부 고위층과 진지한 의견교환을 거쳐 이끌어낸 작품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경제장관과 재계총수간의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을 재촉하는 정부의 요청에 모그룹 총수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며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시범케이스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제안에 따라 정부도 재벌들과 미리 물밑조율을 거쳐 실천가능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재계의 이같은 자세변화가 공동운명체라는 필요조건과 함께, 아직 확고하지는 않으나 상호간 신뢰 회복이라는 충분조건이 동시에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실 정부와 재계는 신정부 출범이후 1년가까이 힘겨루기 양상을 보여왔다. 정부는 재계에 대해 부채비율축소 핵심업종경영 등 5대 개혁과제를 들이밀며 개혁의 가시적인 증거로 빅딜을 독려해 왔다. 재계는 「원론찬성 각론반대」의 전략을 구사하며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대해 여건부터 만들어달라는 식으로 반발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치국면은 지금까지 정부와 재계 양쪽에 도움이 되지 않는 쪽으로 전개됐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의 핵심인 5대그룹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때문에 국가신인도의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재벌그룹의 경영여건도 점차 어려워졌다. 결국 정책수단을 장악한 정부와 실물경제를 장악한 재벌그룹 간에 대치국면을 해소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5대그룹의 개혁이 더뎌진 이유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갑자기 돌출된 빅딜논의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재벌개혁의 결과물이거나 수많은 개혁방안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빅딜이 마치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오인됐다는 것. 이 바람에 부채비율 축소 등 실질적인 재벌개혁 작업이 한걸음도 진척되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얻은 것도 적지않다. 정치권과 정부가 강압적으로 빅딜을 요청하면서도 실제 결정과정은 재벌들의 자율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자율해결」이라는 정부의 방침이 공언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완벽한 신뢰는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 정권처럼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기위해 공권력이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결과라는 얘기다. 정부도 재계가 본격적인 구조개혁에 나설 태세를 보인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경영권 독점을 고집하거나 언젠가 경기가 살아날 것이니 버텨보자는 식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위기돌파와 회생을 지향하는 자구노력에 돌입하는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을 반영해 정부는 재계가 요구한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면서 개별적으로 지원가능한 방안은 장관직을 걸고서라도 수용하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료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회생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5대그룹의 구조조정을 하루빨리 촉진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협조관계 모색은 각자 생존을 위한 절박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긴밀하게 유지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양자간에 양보하기 힘든 부문도 적지않아 완벽한 신뢰관계 구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도 적지않다. 정부가 지향하는 재벌개혁의 목표는 재무구조 개선, 선단식 경영의 탈피, 그룹해체에 준하는 소그룹화 독립경영 등이다. 개혁이 요구되는 사항들은 대부분 오너의 독단적 경영권 행사에서 빚어진 부문이다. 결국 정부정책의 최종 지향점은 오너의 독단경영 방지인 반면 재벌그룹의 의사 결정권은 여전히 오너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이 딜레마인 셈이다. 【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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