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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뱅크로 가자] <6> 노동 유연성이 경쟁력의 축
입력2005-07-17 16:27:17
수정
2005.07.17 16:27:17
"인력감축·증원 원활해야 생산성 향상"<br>잉여인력 처리·아웃소싱등 사사건건 노조 저항 거세<br>노조전임 5대 시중銀평균 21명, 선진국보다 비대화<br>조합원 권익증진 벗어난 정치세력화도 은행발전 막아
96년에는 미국 랭킹 4위였던 케미컬 은행이 6위인 체이스맨해튼은행을 합병했을때의 얘기다. 새롭게 탄생한 체이스맨해튼은행은 시티은행을 제치고 과거 1위의 자리를 되찾았다.
자산규모 3,000억 달러의 미국 최대은행은 합병과 동시에 감량화(downsizing)에 착수했다. 612개 지점중 비슷한 지역에 있는 지점 100개를 폐쇄했다. 전체직원 7만5,000명의 16%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합병후 3년간 모두 15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전략이었다. 미국 은행가의 인수 및 합병(M&A)는 ‘덩치는 키우되, 군살을 뺀다’는 것으로 요약되며, 그것은 인력감축, 중복 사업 폐쇄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양상을 보였다.
기실, 미국 경제가 1980년대의 침체를 극복하고, 뉴욕 금융가가 세계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은행과 기업주들은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지 않으면 더 많은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노조를 하는 것보다 회사에 협조하는 것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확산됐다. 기존의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다투는 것보다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우는데 협력하는 자세로 근로자들의 사고가 전환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은행가는 대규모 인력 감축과 지점 축소라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은행권은 그 덕분에 70~80년대 고성장 과정에서 누적되어 온 군살(비효율)을 제거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한국 뱅킹시스템이 다시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게 된 것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바젤Ⅱ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환경은 은행권에게 자산건전성과 수익성, 생산성등에서 새로운 국제기준을 만족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 새로운 수익 기반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은행권에 또 다른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용의 유연성이 전제돼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김경원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미국의 경우 은행이 합병한 이후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합병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용 유연성에 있어서는 완벽한 상태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은행권이 고용문제에 운용의 묘를 발휘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 중심에는 인력구조의 노쇠화와 비대해진 노동조합이 있다. 은행들은 잉여 인력을 명예 퇴직시키거나 외부 아웃소싱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등의 고용의 유연성이 필요한 업무에서 사사건건 노조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은행 노조의 상급 조직인 금융산업노조의 경우 해마다 벌어지는 노사간 임금 및 단체 협상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사용자측에서는 자주 제기되고 있다.
모 시중은행의 인사 담당 관계자는 “요즘 노조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배짱 좋은 은행이 어디 있겠느냐”며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 어느 정도 입장을 수용할 수 있지만 국내 은행권 노조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는 등 너무 정도가 심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정치 세력화 되어 있는 것도 고용의 유연성을 막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이를 반대하는 파업투쟁이 많이 일어나며 금융노조의 힘이 강력해 졌다”며 “노조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사측이 끌려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금 및 단체 협상 과정에서 조합원의 권익 증진을 위한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인 문제를 쟁점화 하거나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간섭을 주장하는 것도 은행의 발전을 막는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노진호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미국의 경우 금융산업은 서로 경쟁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개별 임금협상만 이뤄지지 한국처럼 노사간 임금 및 단체 협상에 일일이 개입하는 금융노조 같은 노조의 상급 단체가 없다”며 “금융산업은 지식 및 서비스 산업이기 때문에 제조업체처럼 산별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산업의 발전에 바람직한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권은 이미 외환위기 이후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와의 대립으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최근의 이슈는 비정규직원에 대한 문제다. 지난 3월말 현재 5대 시중은행의 전체직원에 대한 비정규직원의 비율은 22.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준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구조조정은 비정규직을 대폭 늘려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정규직원이 하던 일을 비용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으로 돌리는 것은 은행산업의 특성이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외?㎟?직후인 99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효과로 인해 일시적으로 4,780개로 줄었지만 2000년부터 다시 급증해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력구조의 경우 97년 당시 11만3,493명에서 98년 7만5,332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이후 지난해말 현재 6만8,236명에 이르고 있다.
국내 은행 노조는 선진국에 비해 비대하다는 지적이다. 노조 전임자의 경우 5개 대형 시중은행이 평균 21.8명, 일부 은행의 경우 41명을 확보하는등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산별 노조가 활성화 되어 있는 유럽의 경우에도 조합원 1,000명당 1명의 노조전임 직원이 있는데 반해 국내 은행의 경우에는 조합원 200여명 당 전임간부 1명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인력조정 과정에서의 과다 비용지출, 인력조정 후의 고임금 구조, 점포조정의 비효율성 등으로 볼 때 아직 국내 은행권의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목적인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며 “우리나라 은행의 생산성 향상은 대부분 가계대출 확대에 따른 수익 증가와 부실채권 비중 감소 등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선진국과 같이 레이오프(lay-off) 제도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점포 조정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을 경우에만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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