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지역경제를 들여다보면 자생력을 기대하기란 상당히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1980~1990년대 들어선 대기업 공장에 기댄 오래된 경제구조는 신규 공장의 해외 진출에 속수무책이다. 대기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작업은 더디고 지역정부의 혁신역량은 턱없이 낮다. 한마디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역경제보고서(골든북)'에 따르면 최근 전국적으로 완만한 경기회복세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별 온도 차는 상당하다. 특히 성적이 부진한 곳은 호남권과 대경권(대구·경북권)이다.
호남권 경기는 '소폭 감소(지난해 3·4분기)→소폭 증가(4·4분기)→보합(올 1·4분기)' 등으로 갈지자 횡보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한국GM의 유럽 지역 승용차 수출 감소. 지난해 전북 지역의 대유럽 승용차 수출은 반토막(-48.6%) 났다. 전북 지역 제조업생산에서 자동차는 27%로 최대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결정적이다. 한은은 "올해 중 전북 지역 승용차 수출이 약 4분의1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입장이 금지되면서 호남권은 관광업까지 위축됐다.
대경권은 더 심각하다. 대경권 경기는 '보합→보합→보합'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3분기 연속 경기회복 없이 정체돼 있다. 이 지역의 경제를 이끌어온 휴대폰과 디스플레이생산은 구조적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휴대폰의 경우 인건비 때문에 저가 휴대폰은 해외 생산이 늘어나고 국내에서는 최신 휴대폰 연구개발에 집중하다 보니 지역경제에서 고용이 잘 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는 후발업체와의 경쟁, 수요 위축 심화 등 글로벌 업황이 워낙 부진하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기존의 성장엔진의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지만 딱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지역경제 간 경쟁'이 활발한 상황에서 지역경쟁력의 확충은 국가경쟁력의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한은은 첨단기술산업단지의 성공 케이스로 알려진 영국 케임브리지시의 첨단기술 클러스터를 지역발전정책 모범 사례로 꼽았다. 지역 내 높은 브랜드 네임을 가진 강력한 혁신주체가 지역 혁신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케임브리지시에서는 1960년 이후 4,000개 기업이 창업됐고 4만8,000명이 고용돼 120억파운드의 수익을 낸다.
한은 관계자는 "지역 내 높은 브랜드 네임을 가진 대학, 대기업 또는 연구소가 네크워크를 유기적으로 활성화해 지역의 혁신역량을 결집하고 신기술정보 파악과 브랜드 네임 제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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