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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함께 동거했던 여의도 금감원 건물은 시위장으로 바뀌었다. 금감원 노조가 건물 1층 로비에서 천막과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점심 때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금융위 직원들은 이런 풍광을 보면서 "하루빨리 이 공간을 떠나고 싶다"고 푸념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과 한 지붕 아래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기관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얘기다.
행시 23회 동기로 취임 초기 하모니를 연출했던 김석동ㆍ권혁세 두 기관장의 마찰도 잦아졌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기세싸움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는 모습이다.
◇격화되는 두 기관의 대립=마찰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금감원은 지난주(10월26일) 나이스신용평가에 "금융위가 내놓을 유권해석 결정과 무관하게 대부업 개인신용정보(CB)의 온라인 공개를 강행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앞둔 상황에서 금감원은 '공개를 강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상위기관인 금융위의 유권해석 이전에 그런 공문을 보낸 것은 지나치게 과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대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금감원 등의 회신을 통해 발행을 한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에 대해 금융위는 "자본이냐 부채이냐의 논란이 큰 만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금융위는 "5년이 지나 회사가 (채권을) 다시 사주지 않을 경우 추가 금리가 5%, 7년 뒤에는 2% 더 붙는 구조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우스푸어를 위한 세일앤드리스백(매입 후 임대) 방안의 은행 공동 대응이나 주식 신용융자의 보증금 축소, 금융소비자보호원 별도 설치 등을 둘러싼 마찰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선 앞두고 이니셔티브 쥐기=수장 한 명의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분리된 지 5년, 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다시 활발하다. 두 기관 수장도 다양한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주요 후보들이 어떤 방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두 기관의 성격에 확연한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우 금융위가 환율 등 국제금융 부문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을 흡수해 금융부(가칭)로 확대되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가 명실상부하게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된다. 반면 금감원은 현재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가 떨어져나가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한다. 감독 기능과 소비자보호 업무를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금감위(현행 금융위+금감원)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에 흡수됐던 옛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이 부활해 금융정책 결정 기능을 갖고 금융위는 축소돼 금감원과 합치는 시나리오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은 노태우 정부까지 유지됐던 경제기획원-재무부 체제와 비슷한 방안을 갖고 있다. 국가 장기계획 등을 담당하면서 예산권을 갖는 미래기획부(가칭)와 금융ㆍ재무 담당 부서를 설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금융위는 파악하고 있다. 이 경우 금융위는 현 재정부가 맡고 있는 국제금융과 국고 부문까지 담당, 위상이 높아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오는 6일 한국금융연구센터, 7일 한국경제학회가 각각 주최하는 차기 정부의 금융감독체제 개편 토론회에 참석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할 말이 있어 작심하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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