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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은 불씨 가계빚] <상> 불거지는 3년전 '악몽'

고삐 풀린 가계부채… '부실 뇌관' 되나<br>금리 오르는데 집값 떨어져 서민 '이중고' <br>실물자산 비중 80% 달해 외부충격 민감<br>"유연한 금리정책으로 연착륙 유도해야"


『 직장생활 5년차인 권모(31)씨는 올 초 구입한 33평짜리 아파트 때문에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그는 퇴직한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 전세금 1억원에 은행 주택담보대출 8,000만원, 직장조합에서 받은 신용대출 5,000만원을 합쳐 일산에 2억3,000만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월급(300여만원)에 비해 매달 갚아야 될 이자(60만원)가 부담스러웠지만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몇 달새 시중금리가 급상승하면서 권 씨는 매달 5~6만원씩 이자를 더 물어야 될 처지에 놓였다. 설상가상 이사비용을 치루기 위해 받아 놓은 마이너스 통장에 대한 상환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이달말까지 500만원을 전액상환 해달라는 통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3년 5개월만에 이뤄진 콜금리 인상. 국내 시장금리는 이후 미국의 정책 금리 인상과 연쇄반응을 보이며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 24일 연 3.87%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4일 3.96%까지 올랐다. 2% 가까이 되는 가산금리까지 더하면 개인들의 대출이자는 조만간 6%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연간 100만원의 이자를 더 물어야 한다. 중산ㆍ서민층 가계들은 8ㆍ31 대책 이후 자산가치(집값) 하락과 함께 대출이자부담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꺼진 불씨로만 알았던 가계 부채 문제는 이처럼 3년전 신용카드 대란과는 다른 형태로 한국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초만 해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하반기면 가계 부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가계 부채가 500조원을 넘어선 지금도 얼굴 표정에 변함이 없다. 추경호 재경부 금융정책과장은 “가계대출 증가율은 10~15% 수준으로 경상 성장률(물가+GDP성장률)을 조금 웃도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금 패턴”이라며 “연체율도 정상 범위에 있는 만큼 가계 대출의 절대 규모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이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하반기 가계 부채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초 저금리를 틈탄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올 상반기중 가계의 금융부채는 10.0% 증가한 반면 금융자산은 7.3%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개인의 채무부담능력을 나타내는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 6월말 49.3%에 달하고 있다. 누증되는 부채 속에서 저소득층은 이제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개인 파산신청자수는 올들어 7월까지 1만7,000명으로 지난해 전체 1만2,000명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 부채의 구조도 너무나 취약하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총 자산에서 차지하는 실물자산 비중은 30~40% 내외인 반면 우리나라는 80%에 달한다. 실물자산이 워낙 많다 보니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등 외부 충격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가계 부채의 불씨가 경제의 다른 주체들의 부실로 연결되는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특히 상호저축은행은 이미 부실이 표면에 나타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 이하로 떨어진 11곳에는 적색등이 켜진 상황이다. 저축은행은 이미 대주주의 부실 대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상황. 여기에 최근에는 연 5%대의 확정금리 외에 주가지수와 연동한 보너스 금리까지 주는 예금상품을 내놓으며 수신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대 마진을 확보하게 위해서는 고금리 대출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것이 다시 부실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그리는 것은 뻔한 이치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부채상환 부담은 늘어나고 담보가치는 떨어지는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금리가 급격히 오를 경우 충격이 크기 때문에 유연한 금리정책을 통해 연착륙을 유도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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