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문명 이상적 공존<br>해금강 천하절경 자랑…삼성·대우 조선소 지역경제 중심
| 해질무렵 거제도 홍포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작은 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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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소유 관광지 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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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포대첩 기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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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거제도는 푸르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마주한 산자락의 나무들은 봄기운을 머금어 초록을 발하고, 오랜만에 봄 햇살을 받은 남해의 푸른 바다는 말 그대로 쪽빛이다. 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백 나무는 또 어떤가.
기름을 바른 듯 반짝이는 잎새들 사이로 붉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람들에게 거제도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 지 물으면 대답은 대강 3가지다.
해금강, 조선소, 포로수용소.
막상 관광을 위해 거제도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봐도 역시 거제도는 이 세 가지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해금강, 조선소, 포로수용소는 거제도의 자연 환경과 역사를 담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해금강 얘기를 하자면,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라는 명색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71년 지정된 명승 제2호. 거제도 동남쪽에 불쑥 튀어나온 갈곶에서 떨어져 나간듯이 보이는 한 덩어리의 돌 섬을 ‘바다의 금강산’이라 하여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바다는 푸르고 섬은 기이한 모습이다. 북쪽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사자바위, 하늘에 손가락질을 하듯 솟은 촛대바위와 함께, 바닷속으로 넷으로 갈라져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열십(十)자 형 벽간수로를 보면 탄성이 나온다.
거제도의 조선소는 거제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말해주는 시설이다. 세계 수준의 조선소 두 곳(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들어온 이후 거제도는 달라졌다. 우선 한국전쟁 피란민이 많던 주민 구성이 달라졌고, 소득 수준과 산업 구조가 달라졌다. 비공식 집계지만, 거제도의 1인당 GDP는 2만5,000달러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가 있는 옥포만은 그 유명한 옥포대첩의 전승지로, 역사가 담긴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鶴翼陣)을 치고 큰 싸움을 벌였던 바다다. 왜의 군함을 좁은 바다로 유인한 뒤 물목을 막고 재빠른 판옥선으로 불을 질러 대승을 거둔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조선소 앞 다바의 지형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작전을 어렴풋이나마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지금은 기념시설로 변모한 포로수용소는 민족사의 비극을 담은 자리기도 하지만, 당시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제도의 자연 환경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UN군이 잡은 포로는 북한군 15만, 중국군 2만 명 등 17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다.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땅은 구하기 어려웠다. 일단, 탈출이 쉽지 않은 섬이면서도 면적이 넓어야 했으며,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바다가 깊어야 했고, 마실 물이 풍부해야만 했다. 이 조건에 맞는 섬이 바로 거제도였는데, 이는 곧 거제도의 자연환경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거제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설 같은 얘기 하나.
비기(秘記)인 정감록에는 ‘큰 난리가 났을 때 계룡산 아래에 가면 안전하리라’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거제도 사람들은 정감록이 언급한 것이 충남 소재 계룡산이 아니라, 거제도의 계룡산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이라는 난리를 만났을 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비록 포로소요사건 때문에 수용소 안에서 많은 인명이 희생됐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자유 의지에 따라 떠난 경우도 많지 않냐는 주장이다.
“거제(巨濟)라는 말 자체가 ‘크게 구한다’는 뜻이다”라는 주민들의 말까지 듣고 나면, 정감록 얘기는 접어두더라도 거제도가 살기 좋은 섬이라는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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