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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이 넘어서도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가공) 업체인 대만의 TSMC를 진두지휘하는 모리스 창 회장. 그는 파운드리 분야를 창시해 반도체 역사의 진화를 이끈 인물이자 대만 반도체 업계의 아버지로 통한다. 이런 창 회장이 요즘 초조함을 외부에 내비치는 일이 잦아졌다. 공정 미세화 '장인'인 김기남 반도체 총괄사장을 앞세운 삼성전자가 최신 14나노 핀펫 공정의 순조로운 양산에 성공하면서 애플·퀄컴 같은 TSMC의 주요 고객사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창 회장과 김 사장이 다음 고지인 10나노 공정 선점을 천명한 가운데 파운드리 왕좌를 지키려는 TSMC와 넘보는 삼성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삼성에 설욕을 벼르는 TSMC는 5,000억대만달러(약 17조5,000억원)를 투자해 타이중에 생산설비를 확장하겠다고 이달 중순 발표했다. TSMC는 오는 5월 공장 3곳을 새로 짓기 시작해 2017년 10나노미터, 2018년엔 8나노 공정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련 연구개발(R&D) 지출액까지 포함하면 총 투입비용이 7,000억대만달러에 이르는 이 회사 사상 최대 규모 투자다. 반도체 회로선폭의 단위인 나노미터(nm·1nm은 10억분의1m)는 그 숫자가 작아질수록 더 성능이 좋고 크기가 작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50%에 달하는 TSMC의 지난해 매출은 우리 돈으로 약 26조7,000억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매출 추정치(2조~3조원)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그러나 창 회장이 삼성을 경쟁자로 예의주시하는 것은 그간 메모리에서 쌓아올린 공정 미세화 기술로 TSMC를 위협하는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에 14나노 핀펫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 대(對) TSMC 연합도 결성한 상태다. 더군다나 TSMC가 주력해온 16나노 핀펫 공정이 아직도 안정적 양산 단계에 접어들지 못하자 애플·퀄컴에 이어 AMD·엔비디아마저 삼성·글로벌파운드리 연합에 칩 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삼성전자에서 줄곧 공정 미세화 기술 개발에 전념해 온 삼성 '펠로우(석학)' 김 사장은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2015'를 통해 차세대 10나노 기술을 선보이면서 TSMC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공정은 기술개발 이후 통상 1~2년 내 양산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10나노에 이어 조만간 7나노까지 미세화를 진척시킨다는 중기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삼성은 파운드리 업계 후발주자지만 공정 미세화의 주도권을 쥐면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말 기준 TSMC(113억달러)의 6배에 가까운 600억달러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해 대규모 설비 투자 경쟁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투자자 포럼을 열고 기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한 '토털 파운드리 솔루션'을 3대 중장기 전략사업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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