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을 분석해보면 '법인 대출 감소, 소호 대출 증가'라는 패턴이 발견된다. 국민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올 1월 말 65조4,797억원에서 11월 말 68조6,476억원으로 늘었다. 3조1,679억원이 증가한 셈인데 이 가운데 소호 대출 순증 규모가 3조9,200억원이나 돼 법인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 신한은행의 중기 대출도 같은 기간 1조8,561억원 감소한 반면 소호 대출은 2조원가량 늘었다.
법인 대출 감소는 경기침체로 기업의 자금수요 자체가 줄었고 은행도 위험회피에 치중한 결과다. 반면 소호 대출 증가는 은행들이 개인 사업자를 우대했다기보다 소호 대출 심사가 재무제표보다는 차주의 재력 등 담보 위주 평가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자금 집행의 성격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금융당국과 은행은 해석을 달리한다. 당국은 은행들이 경기침체 장기화 속에서 몸을 사린다는 입장이지만 은행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수신이 지속적으로 늘어 이를 소화할 창구가 필요한 만큼 굳이 중기 대출을 줄일 상황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대출수요가 많이 줄었다"며 "감독당국이 중기 대출을 늘리라고 독려한다 해서 늘어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호 대출의 경우는 대부분이 생계형 대출이라 오히려 기업 대출보다는 안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소호 대출이 증가했다기보다는 법인 대출이 줄어들어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은행들도 대출감소가 중소기업의 돈맥경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중소기업이 증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5,0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62% 줄었고 채권발행을 통한 자금마련도 629억원으로 1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조달의 가장 큰 창구인 은행 대출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회사채나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금조달은 대기업과 우량 중소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라 자금난에 봉착한 중소기업들은 기댈 언덕이 없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된 중소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건설업ㆍ해운ㆍ철강 등의 분야에서 한계 기업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은 기계나 원자재 등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동산담보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혜택이 주로 제조업체에 국한돼 큰 기대는 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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