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는 대ㆍ중소기업 간 윈윈이 목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것과 상관없는 노동ㆍ환경 분야까지 경제민주화로 둔갑되면서 기업을 옥죄고 있습니다."
29일 오전7시30분에 열린 정부와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 없는 법안조차 '민주화'라는 명패를 달고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비슷한 시각 같은 호텔에서 진행된 대한상공회의소 서울상의 회장단 회의에서도 범람하는 각종 기업규제에 대한 갖가지 우려와 불만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이날 두 회의에서 우선 정부의 투자 및 고용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배상근 전경련 본부장은 "기업과 정부가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민생안정과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는 범람하는 각종 기업규제 법안이 이 같은 선순환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지금 상황이 우리 경제가 재도약을 할 수 있는 변곡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정부나 국회에서 조금만 도와줬으면 한다"며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재계는 우선 환경ㆍ노동 규제가 성장과 투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자원순환법 등은 산업계의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사장은 "화관법과 화평법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중소ㆍ중견기업들까지도 투자를 주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원순환법도 성장촉진 지원법이 돼야 하는 데 규제법으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 이슈에 대해서는 한국이 프랑스처럼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이 부회장은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프랑스와 같이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로 알려져 투자유치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설명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가 기업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문제는 정부의 부처 간 조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환경 분야 기업규제 개선과제로 통합허가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심도 깊은 논의를 주문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규제완화 요구가 쏟아졌다. 산업단지와 택지개발지구 사이에 걸쳐 있는 공장부지 문제를 해소해달라는 요청부터 산업단지 내 용지확보 어려움, 항만·부두 부족, 조선업 대출지원 문제가 제기됐고 고용 및 연구개발(R&D) 관련 세제혜택 연장 요구도 나왔다.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도 세제개편안에 연구개발 투자세액 공제 등 각종 공제 제도가 폐지될 예정"이라며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 최소 현행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이 같은 기업들의 요구에 대해 "경제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다같이 함께 뛰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업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언제든 문호를 열어놓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대기업 사장은 "상반기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들이 많이 통과됐고 지금도 많은 법안들이 대기 중"이라며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많이 도와줬으면 한다"는 재계의 바람을 윤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날 두 회의에서 재계가 이처럼 범람하는 기업 규제 법안에 대해 강도 높게 우려를 표시하기도 하고 읍소도 했지만 이런 재계의 바람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각종 기업규제 법안이 기업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고 정부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정부가 기업들의 입장을 듣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