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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사업 통일의 초석 되길”/유명환 외무부 북미국장(기고)
입력1997-08-21 00:00:00
수정
1997.08.21 00:00:00
유명환 기자
지난 19일 열린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 부지 기공식에는 한·미·일 등 KEDO 집행 이사국의 대표, 일반 회원국의 대표와 함께 시공을 맡은 많은 수의 한국전력 및 시공사 관계자가 참석하였다.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을 규정한 미·북 기본 합의문이 제네바에서 체결된 지 34개월만의 일이다.미·북 기본합의문 체결 이후 경수로 공급협정 협상 과정에 있어서 북한측이 한국 표준형 경수로의 공급을 끈질기게 거부하면서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였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력이 주계약자로서 한국 표준형 경수로를 건설하는 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는 것은 격세지감까지 느끼게 한다.
미·북 기본합의문의 기본 골격은 북한이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쉽게 추출할 수 있는 흑연 감속 원자로를 동결하고 궁극적으로는 해체하도록 하는 한편 한·미·일 3국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 컨소시엄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경수로 완공시까지는 대체 에너지로서 연간 50만톤의 중유를 공급해 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기본합의문 협상의 전 과정에 있어서 우리와 긴밀한 협의를 가졌으며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 표준형 경수로를 공급한다는 양해하에 기본합의문에 동의하였다. 우리로서는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핵비확산이라는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적 대의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장기적 투자로서 대북 경수로 공급에 동의하였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주도로 우리사람들이 경수로를 건설하면서 남북 대화의 창구를 열며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나아가 통일에까지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협상의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과거 핵활동보다는 장래의 핵위협을 제거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우리는 차제에 북한의 과거 핵활동까지도 분명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호 강조의 차이가 지적되기도 했다. 또한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이 체결한 협상에 대해 왜 우리가 돈만 내는가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미국은 사실상 협상의 전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긴밀히 반영하여 북한과의 교섭에 임하였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결국 우리의 문제로서 어찌되었든 우리가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미·북 기본 합의는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어 나가는 가장 현실적인 틀이 되고 있다. 북한의 사용후 연료봉 봉인 작업은 90% 이상 진척을 보이고 있고 북한이 동결한 핵시설은 IAEA에 의해 감시되고 있다. 북한의 과거 핵활동이 분명하게 규명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도 수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미·북 기본합의문은 일단 북한 핵문제를 관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수로 사업에서의 당면 과제는 개략사업비를 확정하여 KEDO 회원국간 분담 범위를 확정짓고 재원을 조달하는 일이다. KEDO와 한전은 일단 초기 사업 계약만을 체결하여 향후 1년정도에 걸쳐 부지정지공사 등 경수로 건설에 필요한 기초공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초기 사업이 완료되기 전에 전체 사업 예산이 확정되어 재원이 조달돼야 공사가 중단없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경수로 건설 사업비는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일본은 실질적 기여를 하는 것으로 양해된 바 있으며 미국은 중유비용 조달을 담당하는 것으로 한·미·일 3국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으나 각국의 구체적 재정 기여 규모는 개략사업비가 확정되는 대로 협상을 개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으나 우리가 전적으로 시공을 맡아서 공사를 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재정기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우리의 경수로 건설비용을 통일비용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수로 사업이 남북간 교류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KEDO와 북한은 공급협정의 구체적 이행을 위하여 영사보호, 통행, 통신, 부지, 서비스, 재정의무 불이행시 조치 의정서들을 체결한 바 있다. 얼마전 KEDO의 신포 사무소가 설치되고 신포 현장과 전화가 연결되며 신포에서 보낸 편지가 한반도 분단 이후 최초로 서울에 도착한 것은 이러한 의정서가 발효된데 따른 것이다. 앞으로 KEDO와 북한은 품질보증 의정서, 훈련 의정서, 인도일정 의정서 등 경수로 사업 이행을 위해 공급협정에 규정된 잔여 후속 의정서를 체결해야 한다.
경수로 사업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며 수십억달러의 예산과 연인원 천만명 이상의 인력이 소요되는 대규모사업이다. 한반도 분단이래 최대 규모의 남북한 공동 사업인 경수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앞으로 막대한 양의 물자와 인력이 남에서 북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것은 막혀 버린 남북한 대화의 물꼬를 활짝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 우리는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를 보다 실감나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경수로 사업이 남북한 대화의 창구가 되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나아가 민족번영을 위한 통일의 기반을 닦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약력
▲46년 서울생 ▲서울대 행정학과 ▲외무고시 7회 ▲외무부 주일3등서기관 ▲북미과장 ▲장관보좌관 ▲주미참사관 ▲미주국심의관 ▲공보관 ▲주 유엔공사 ▲95년 대통령외교비서관 ▲96년 11월 북미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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