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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조용필 콘서트'로 수만명이 운집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관중석에서 가왕 조용필의 컴백을 지켜본 수만명의 팬 중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도 있었다. 주말에도 좀처럼 쉬지 않는 윤 회장이 이날 시간을 쪼개 콘서트장을 찾은 이유는 '진화를 거듭하는 사람의 마력'을 직접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무는 사람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쉼없이 진화하는 사람은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윤 회장의 믿음이다. 그가 계속 공부하고 기업의 혁신을 모색하는 이유다.
윤 회장은 "발전은 쉽지만 진화는 어렵다"며 "진화는 발전과 달리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익히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비형 CEO' 꼽힌다. 늦깎이 박사학위를 딴 것이나 역사 공부에 심취해 관련 책을 섭렵하고 출장 때마다 박물관을 빼놓지 않고 들르며 골동품을 수집해 회의실에 작은 박물관을 만든 것 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윤 회장은 원칙이 있는 CEO다. 회사 설립 초기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 예정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도 한 고객사가 제안한 무자료 거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콜마의 제품이 경쟁사들에 비해 단가가 높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윤 회장은 "인건비를 줄이고 질이 낮은 재료를 쓰면 얼마든지 단가를 낮출 수 있겠지만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회사의 발목을 잡게 된다"며 "ODM 회사는 가격이 아니라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2011년에는 3명의 공채 1기 직원들을 임원으로 승진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충남 연기군에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3명을 두고 시작한 사업이 현재는 연 매출액 5,000억원대(한국콜마 단독 약 3,600억원), 직원수 760여명으로 커졌지만 그의 인재론은 변함이 없다.
윤 회장은 "기업(企業)의 기(企)자는 사람 인(人)과 머물 지(止)를 합쳐놓은 것"이라며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 모으고 한길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콜마는 지금까지 매년 신입사원을 뽑았다. 윤 회장은 콜마인이 되기까지는 평균 5년이 걸린다고 했다. 기술이 뛰어난 경력직을 외부에서 데려와도 그는 철학을 공유해야 한솥밥을 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 윤 회장은 "집안이 좋아지려면 아버지보다 아들이 나아야 하고 그 아버지는 할아버지보다 나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람을 키워서 쓰는 것이 기본"이라며 "이때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를 이용하는 방식, 즉 임직원의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인재를 키우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중히 여기는 문화는 독특한 복지제도에서도 드러난다. 콜마 직원들은 결혼 후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부모님 1인당 월 20만원을 지원받는다. 출산을 한 직원에게도 첫째 때는 50만원, 둘째는 100만원, 셋째는 500만원의 현금을 쥐어준다. 윤 회장은 "남다른 복지제도를 만든 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며 "오전이나 오후에만 휴가를 내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반일 휴가제를 국내 최초 도입한 것도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에겐 최고의 선택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한번도 지름길을 택해본 적은 없다. 중국 시장에 첫 진출할 때도 '중국 스탠다드'를 배우기 위해 규제가 가장 많은 베이징을 첫 타깃으로 삼았다. 사업가로서 자질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1974년 당시 고액 연봉을 주는 은행을 박차고 나와 중소 제조기업인 대웅제약을 택했다. 대웅제약에서 그는 관리ㆍ영업ㆍ생산 등 전 파트를 두루 거쳤고, 당시의 경험은 관록이 붙은 현재에도 두고두고 자산이 되고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 콜마를 택한 것도 만족스러운 선택이다. 기술 제휴는 물론 전세계 9개국, 5대양 6대주에 포진해 있는 콜마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화를 앞당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콜마 역시 20여년전 윤 회장 한 사람만 믿고 투자한 결과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성장사다리 육성 정책에 반가움을 나타냈다. 윤 회장은 "그간 한국경제는 대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국민과 중소기업이 희생하는 구조였다"며 "지금이라도 가업승계 여건 개선 등을 통해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경제민주화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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