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시혜성 특별법·의원입법 홍수… 법체계 일관성 뒤흔들어

1부. 법·질서부터 바로잡아라<br><2> 행정법령 뜯어고쳐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의안과 사무실에 가뜩 쌓여 있는 법안 서류들을 점검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졸속 입법에 위헌소송 해마다 느는데
국회·행정부, 기존 규정 삭제·폐지 소극적
입법자 책임 명문화·감시 시스템 필요


기업만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와 행정부도 여론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좇는다. 이들이 볼 때 국민은 법을 잘 모른다. 그럴 듯한 이름에 건수만 많이 잡히면 일단 '놀지 않고 일한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법은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국민은 더 헛갈리고 규제는 무제한 양산된다.

◇10건 중 1건이 특별법=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특별법 홍수'다. 국내 법률 1,287개 가운데 144건(2012년 10월 기준)이 특별법ㆍ특례법ㆍ특별조치법 등 법 이름에 '특별'을 붙이고 있다. 10건 중 1건이 특별하다는 소리다. 입법자의 과시 때문에 기존 법 체계로도 소화할 수 있는 법이 '특별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형적으로 늘어버렸다. 법조계 인사들조차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과도한 특별법은 기본법을 사문화시키거나 일관된 체계를 어그러뜨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더 큰 문제는 특별법의 상당 부분이 보상 등 시혜적 성격이 강하거나 지역개발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국민감정이나 지역민심에 뿌리를 두다 보니 법 체계를 흩뜨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돼버린 셈이다. 지난해 국회가 특별법을 자제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되는 게 특별법이다.

◇의원입법 폭증…절반 이상 쓰레기통=입법자가 서로 튀기 위한 경쟁에 매몰돼 있다 보니 법의 양적 팽창도 도가 넘었다. 지난 15대 국회에서 1,144건이던 의원발의법률안 건수는 18대에서 1만2,220건으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하지만 법률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것은 15대 31.2%에서 18대 10.4%로 뚝 떨어졌다. 수정안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18대 국회의 가결률은 13.6%에 불과하다.

쓰레기통을 향하는 법안은 훨씬 많다. 15대 국회에서 폐기된 의원발의법률안(대안반영 포함) 651건이었는데 18대에는 1만49건(82.2%)으로 1만건을 넘었다. 18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1만2,220건 중 1만건 이상이 버려진 것이다. 이 중 다른 법에 대안 반영조차 안 되고 버려진 법률도 6,822건(55.8%)이나 된다. 이 정도면 법의 중심에 선 의원들이 오히려 법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의원 본인이 서명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품앗이', 이미 폐기된 법안을 몇 줄만 고쳐서 새것처럼 내는 '이삭 줍기' 같은 구태도 여전하다. 국회의원들이 실적에 연연하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다. 국회 법제실 법제관을 지낸 류여해 박사가 쓴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에 따르면 한때 형사상 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더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한 의원이 '13세 미만'으로 법률 개정안을 만들었고 또 다른 의원은 경쟁심이 발동해 '12세 미만'으로 고쳐서 입안했다. 둘 다 실적에는 잡혔다. 법률안 입안건수를 늘리기 위해 고민 없이 입법권을 휘두르는 단적인 예다.

◇뒷감당은 고스란히 국민 몫=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분위기는 행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여론이 들끓으면 정부는 일단 규제의 칼을 휘두른다. 규제는 '힘'이 되고 힘은 기득권이 된다. 공청회는 요식행위에 가까울 뿐 정부원안은 거의 그대로 통과된다. 여론을 등에 업고 규제를 들이기는 쉽지만 한 번 도입된 규제를 없애기는 지난하다. 질적 수준이 낮은 대량의 법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은 오롯이 국민세금으로 충당된다.

급하게 대충 만든 법 때문일까. 위헌소송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헌법소원 접수건수는 2009년 975건에서 2010년 1,035건으로 1,000건을 넘기더니 2011년 1,047건, 2012년 1,183건 등으로 불어났다. '묻지마 헌법소원'이 늘어난 탓도 없지 않겠지만 그만큼 법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문제제기가 많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 법령은 서로 모순되거나 대치되지 않는 '법 체계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며 "국회의 입법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입법자의 책임과 의도를 정확히 기록에 남겨 법조문 하나를 만들 때에도 책임감과 신중함을 갖도록 감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