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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주 열정이 멋진 작품 만들었다.
입력1999-11-24 00:00:00
수정
1999.11.24 00:00:00
이학인 기자
「99한국건축문화대상(大賞)」 수상작들은 모두 건축주의 이같은 열정이 담겨있다. 특히 이번 수상작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속에서 건립된 것이어서 건축주들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더했다.본상을 수상한 구산타워 건축주인 구광길(具光吉) 구산물산 대표. 금융인 출신인 그가 땅 매입부터 건물을 완공하기까지는 꼬박 12년이 걸렸다. 지난 87년 서울증권 전무를 지낼 당시 퇴임 후 목욕탕이나 운영할 요량으로 땅을 매입했다. 21개 필지로 쪼개진 708평의 부지를 사들이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지난 92년 착공 후 올해 완공하기까지 그는 「건물에 미친 세월」을 보냈다. 좋은 석재를 얻기 위해 해외 각국을 누비고 다녔다. 자메이카 여행 중에는 건물 화장실에 걸어 놓을 만한 그림을 사려고 가던 차를 멈추기도 했다. 최대한의 용적률로 크게, 빨리 짓는 것이 임대빌딩 건축요령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그는 십여년 동안 한결같은 애착과 열정으로 뛰어난 건축작품을 빚어낸 것이다.
具대표는 『한국에서 개인 자격으로 이만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자손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수 있게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일산 전용주거단지에 들어선 임거당(林居堂)의 30대 건축주 부부인 임종기(林鍾基)·오경아(吳京兒)씨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1년여 동안 건축을 공부했다. 각자 수십권의 전문서적을 읽고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이 얻은 결론은 한국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집을 짓자는 것. 이같은 생각을 실현시켜줄 건축사를 찾아 11곳의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한 끝에 임거당이 탄생했던 것이다.
자칫 경제적인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수상작도 있다. 부산 당감동 주공아파트는 94년 주공이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한 작품. 쟁쟁한 12개 건축설계사무소가 응모해 설계단계부터 「작품」이 될만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 새로운 개념의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해야했다. 적자가 뻔한 새로운 건축에 대한 반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명환 주공설계 계획처장은 『비록 적잖은 비용이 더 들었지만 21세기 공동주거 건축의 모델을 제시하자는 대의명분이 당감주공아파트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자식을 대하듯 애착을 갖고 건립했지만 경제위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진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수상작도 있다. 구리로 된 지붕과 유리벽체가 날렵한 배를 연상시키는 포천 아도니스골프클럽하우스의 실질적인 건축주는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회장의 부인 정희자(鄭禧子)씨.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남을 잃은 그녀는 이 골프장을 아들 대하듯 했다. 鄭씨는 골프장 건설과정에서 심을 나무의 수종과 식재 위치까지 손수 고를 정도로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비운과 함께 포천 아도니스는 개장한 지 5개월만인 지난 10월 미국계 사업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임거당을 설계해 설계부문 본상을 수상한 이로재 김효만(金孝萬) 건축사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사벨라 여왕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훌륭한 건축물은 결국 건축주가 만든다. 안목과 정열을 가진 건축주들이 많아져야 한국의 건축문화도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학인기자LEEJK@SED.CO.KR
전광삼기자HISA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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