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이 큰 장세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펀드 투자문화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들어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지난해보다 100% 이상 증가하는 등 국내 펀드 투자 기반은 양적ㆍ질적 업그레이드를 이뤄냈다. 그러나 시황 랠리 속에 장기ㆍ분산투자를 외면하는 ‘3개월 펀드 단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투자 원칙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일찌감치 ‘저축보다는 장기투자’문화가 정착된 영국ㆍ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개별상품보다는 장기보유계좌에 대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혜택을 부여, 정부 차원에서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 주도 아래 ‘모든 국민의 투자자화’를 지원하며 각종 문제점을 보완해가고 있는 주요 유럽 국가의 투자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짚어본다. ▦영국- 정부가 자산관리…개인 자산에 기초한 장기 투자 지원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사회복지의 천국이던 영국의 사회복지제도가 개인자산 장기투자를 통해 개인 스스로 구현하도록 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걷어들여 시행하던 사회복지제도가 각 개인자산에 엄청난 세제 혜택을 부여, 전생애에 걸쳐 저축과 투자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이 같은 변화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펀드자산 가운데 주식형 펀드 비율이 71.5%에 달하며 세계 1위의 주식형 펀드 투자국인 영국은 정부가 나서서 국민 개개인이 생애 전반에 걸쳐 ‘자기 자산에 기초한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인생의 주요 단계(life-cycle)별로 대표적인 투자 수단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은 특정상품보다는 계좌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유년기를 위한 어린이 펀드(Child Trust Fund)제도, 만 16세 이후 장년기를 위한 개인 종합저축ㆍ투자계좌(ISAㆍIndividual Savings Accounts), 퇴직 이후를 위한 연금(Pension), 정보 획득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안정관리형 금융상품’ 등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어린이 펀드는 어린이의 출생과 함께 자동 가입되는 개인 저축ㆍ투자계좌로 지난 2002년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가 계좌 개설 때 250파운드(저소득층 자녀는 500파운드), 만 7세 때 250파운드를 각각 지원해주고 있고 중학교에 입학할 때 250파운드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투자 규모는 한달에 100파운드씩 연간 1,200파운드까지 가능하며 본인뿐 아니라 부모ㆍ보호자ㆍ가족ㆍ친구 등도 투자할 수 있다. 납입금액 인출은 어린이가 심하게 아파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출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만 18세 이후부터는 용도 제한 없이 마음껏 인출이 가능하다. 이 같은 어린이 펀드는 자본ㆍ이자소득이 비과세될 뿐만 아니라 부모나 조부모 등도 어린이 명의로 투자가 가능해 증여ㆍ상속세가 면제되는 효과도 있다. 또 부모가 투자 성향에 따라 여러 운용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펀드들 중 하나를 골라 가입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4만8,911명이 어린이 펀드계좌를 개설해 계좌당 평균 1,048파운드씩 총 5,129만4,000파운드를 투자했으며 어린이 펀드를 취급하는 운용사와 판매사도 119개에 달한다. 어린이 펀드를 운용하는 영국자산운용사인 F&C인베스트먼트의 존슨 홀랜드 국장은 “30년 전만해도 8%에 불과하던 대학 진학률이 최근 들어 50%를 상회하게 됐고 학자금이 개인 부담으로 바뀌며 이 같은 상품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며 “국민들의 저축과 투자를 진작시키고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한 것이 어린이 펀드의 도입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성인을 위한 ISA는 개인자산을 펀드ㆍ주식ㆍ생명보험ㆍ현금 등에 고루 투자할 수 있는 개인종합계좌로 16세 이상의 영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연간 7,000파운드(약 1,300만원)까지 거치식 또는 적립식으로 투자할 수 있으며 지난해 4월 기준 가입자 수는 1,600만여명에 달한다. ISA와 이의 전신인 개인종합계좌(PEP)가 전체 펀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달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SA는 현금ㆍ예금ㆍ회사채 등의 이자소득과 자본소득 모두 비과세되고 현금자산과 투자성 자산 간 자유롭게 자금을 이동할 수 있어 필요할 때마다 제한 없이 현금 조달이 가능해 인기를 모은다. 리처드 사운더 영국자산운용협회 협회장은 “연금 펀드와 ISA, 어린이 펀드 등을 통한 장기투자가 주식시장과 펀드시장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라며 “각 개인의 자산관리는 물론 시장 및 경제 전반을 지지해주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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