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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동통신 3사가 보조금 지급 등 소모적인 경쟁을 자제하는 대신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서비스 경쟁과 함께 공격적인 탈(脫)통신 사업 육성 등으로 그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를 통해 애플, 구글 등에 빼앗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최근 이통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과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직장인 조현민(28)씨는 최근 수 개월 동안 가격추이를 지켜보고 나서야 부모님께 선물할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지난해 9월 10만원대 갤럭시S3라는 기회를 놓친 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것. 조 씨처럼 "가격이 비쌀 때 사는 사람만 바보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동통신 시장 전반에 불신이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다. 한 이통사 관계자도 "지난해 보조금 경쟁 때문에 이통사들의 브랜드 이미지가 최악인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수조 원이 보조금 경쟁에 투입됐지만 쏟아부은 만큼 경쟁사 가입자를 빼앗는 데 성공한 통신사도 없다. 지난 수년간 지속돼온 국내 이통 시장의 현실이다. 이 같은 소모적인 경쟁에 지친 이통사들이 최근 보조금 대신 서비스 위주의 경쟁이 이뤄져야 가입자의 마음도 되돌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격적인 신호탄은 SK텔레콤이 쐈다. "우리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죠. 앞으로는 가입자들이 정말 혜택을 볼 수 있게 해 나갈 거고, 이게 시작입니다." 지난달 22일 가입자 간 무제한 음성통화 요금제인'T끼리 요금제 를 출시한 바로 다음날, SK텔레콤의 하성민 사장이 한 이야기다. 하 사장과 SK텔레콤 임원들은 올해 들어 부쩍 '반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자주 올렸다. '17만 원짜리 갤럭시S3'를 낳은 보조금 과열 경쟁이 이동통신 업계에 상처만 남겼다는 반성이다.
'T끼리 요금제'는 SK텔레콤 가입자 간의 통화를 무제한 무료로, 문자메시지는 이동통신사 상관 없이 무제한 무료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요금제다. 이동통신사의 주된 수익 기반이었던 음성통화ㆍ문자 서비스를 무료화해 가입자 만족도를 높이는 대신 더 많은 데이터 이용을 유도해 데이터 위주의 수익구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게 SK텔레콤의 전략이다.
이는 이통 시장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KT 역시 지난 1일 가입자 간 무제한 음성통화 요금제를 내놨다. KT의 '모두다 올레' 요금제는 SK텔레콤보다 더 많은 망외(타사 가입자와의 통화) 기본통화량과 데이터를 제공한다. 소비자로선 반가울 수밖에 없다. LG유플러스는 아직 비슷한 요금제를 검토 중이지만, 한 관계자는 "어떻게 '플러스 알파'를 더해 선보일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가입자 빼앗기가 아닌 장기 가입자 우대로 고객가치를 제고하려는 움직임도 꿈틀대고 있다. SK텔레콤은 '착한 기변'과 'T끼리 데이터 선물하기' 등을 선보였다. '착한 기변'은 SK텔레콤의 서비스를 18개월 이상 이용한 가입자들이 기기를 바꿀 때 27만원까지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동통신사를 바꿔야 보조금을 받아 스마트폰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기존 가입자를 우대해 그들의 이탈을 막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셈이다. 'T끼리 데이터 선물하기'는 가족ㆍ친구 등에게 남는 데이터를 선물할 수 있는 서비스로, 안 쓰면 소멸되는 데이터를 필요한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추가 수익을 없애는 서비스지만, 장기적인 가입자 확보에는 긍정적일 전망이다. '착한 기변'과 'T끼리 데이터 선물하기'는 출시 2개월 만에 각각 50여명 이상이 이용하는 등 가입자들로부터 호응이 상당하다. 이는 경쟁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KT는 지난 2~3월 '착한 기변'과 비슷한 '통큰 기변'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LG유플러스가 레저족을 위한 방수폰 '지즈원'을 단독 출시하는 등 차별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휴대전화 유통구조 개선과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출고가가 인하되면 보조금 과열경쟁의 여지가 줄어든다"며 "정부에서 휴대전화 제조사의 마케팅 비용을 제재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가격의 급변동을 부추기는 판매점에 대한 '관리'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판매점은 이통사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형태로, 전국에 수만 개의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판매점은 이통사에서 아무리 제재해도 역부족"이라며 "이통사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등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동통신사들의 서비스 경쟁은 올해 하반기에 불붙을 롱텀에볼루션(LTE) 어드밴스드 경쟁과 맞물려 진행될 전망이다. LTE 어드밴스드는 LTE보다 2배 빠른 속도(150Mbps)를 자랑하는 차세대 통신 서비스다. 하성민 사장은 늦어도 오는 9월부터 LTE 어드밴스드 서비스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앞서 밝혔다. KT와 LG유플러스도 선두를 놓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LTE 2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는 LTE 어드밴스드를 통한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마케팅에 치중했다면, 올해는 LTE 가입자 비중을 75%까지 높일 계획"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전체 가입자의 5% 수준인 50만명 이상까지 순증 가입자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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