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세(bank levy)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공식적으로 정부 방침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시중은행장들은 대놓고 반대 입장이다.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부담이 결국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갈 것이란 논리다. MB노믹스의 아킬레스건인 중소기업과 서민을 내세운 반대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은행세에 대한 정부의 마음은 '도입' 쪽으로 기울고 있다. 글로벌 공조에 맞춘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지만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ㆍ세제실ㆍ경제정책국은 물론 국세청ㆍ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 등이 포함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은행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청와대도 은행세 도입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한 방법으로 신흥국가에 은행세는 무분별한 단기 자본 유출입의 문턱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김인준 서울대 교수는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단기자본 이동에 대한 대처 방안 중 은행세 도입 필요성이 논의돼야 하고 단기자본 이동에 대한 글로벌ㆍ지역ㆍ국가 간 금융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세 금융안전망 역할 기대=정부는 은행세 도입을 통해 금융위기 상황에서 반복되고 있는 무분별한 외화자금 유출입의 문턱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은행의 외화차입을 포함한 비(非)예금성 부채에 대해 은행세를 부과해 단기성 외화차입을 적절히 제어하고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입은 유동성 과잉을 초래해 통화정책 운영에 제약 요소가 되는 동시에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워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힌다"고 지적했다. IMF는 지난 4월 워싱턴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금융회사의 비예금성 부채에 일정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안정분담금(FSC)과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과 보너스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활동세(FAT)를 은행세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중기ㆍ서민에게 부담… 실효성 없다=14일 국내 12개 은행장들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의 금융협의회에서 은행세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은행세 부담이 은행차입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커 실효성이 없다는 논리다. 은행장들은 은행세 도입으로 은행의 외화차입금이나 외국계 은행의 본점차입금 조달비용이 늘어나 단기자본 유출입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본지점 간 거래를 통해 충분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경우에는 규모 자체도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금융연구원은 "국내 은행은 외화 관련 수요가 존재하는 한 은행세를 대출금리와 수수료에 전가시켜 외화차입을 계속할 것이고 외은지점도 외국인 투자가 존재하는 한 자본 유입을 계속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은 징수된 은행세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과 이미 우리나라는 예금보험기금을 조성하고 있어 은행세 개념이 상당 부분 도입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울며 겨자 먹기식 도입은 곤란=정부가 은행세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입장을 먼저 밝혀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G20 의장국인데다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G20 의장국으로서 은행세에 대한 세계적인 공조의 장을 마련만 해주면 된다"며 "의장국이라는 이유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은행세를 도입한다면 그야말로 '자승자박'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손익계산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섣불리 한국판 은행세 도입을 추진하기보다 국제적 논의에 발맞춘 방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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