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5m 높이로 건설 중인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주목되고 있지만 정작 기본설계는 미국 기업 KPF가 맡았다. 부산에도 101층 규모의 마천루 엘시티가 지어지고 있으나 주설계는 미국계 SOM의 솜씨다. 사업 공정관리도 미국계인 PB사가 담당한다.
건설산업 경쟁력 세계 7위라고 자화자찬하면서도 국내 건축물조차 해외 설계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서비스 산업 분야의 우울한 단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지만 기업들의 해외사업 자문은 외국계 법무·회계·금융업체들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로 떠올랐지만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은커녕 국내 시장도 지켜내기 힘들 정도로 영세하다. 특히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문 서비스업인 법률·회계·세무·건축·엔지니어링·변리 등의 분야에서는 아직도 아장대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전문 서비스 산업이 반세기 넘도록 약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업종 간 합종연횡식 성장을 막아온 '나눠먹기식 칸막이 규제'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쉽게 말해 건축사·의사·약사·회계사·변호사·변리사·감정평가사 등 주요 전문직종이 각각 자신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안주해 규제장벽을 친 것이 전문직 서비스 산업의 영세성을 유발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들 전문직이 주로 생명과 안전·재정 등 민감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요구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자격증이 영업면허로 변질되고 있다. 이른바 '사(士)'자 돌림 전문직들이 기득권을 지키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장벽은 서비스 시장의 시장경쟁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산업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 전문직의 진입장벽으로 꼽히는 대표적 규제는 선발인원 규제다. 예를 들어 공인회계사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과거 연간 1,000명 수준에서 뽑던 선발인원 규제(선발예정 인원) 방식을 폐지하고 지난 2007년부터 합격자 최저한선(최소선발 인원)만 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매년 발표하는 최소선발 인원을 보면 750~850명선을 맴돌아 과거의 연간 합격예정 인원 1,000명선을 사실상 유지하고 있다. 즉 무늬만 인원규제 폐지일 뿐 실질적으로는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지난해 공인회계사 최종합격자 수가 904명이었다는 점도 이 같은 폐단을 방증한다.
세무사도 회계사와 마찬가지로 2002년부터 선발예정인원제에서 최소선발인원제로 선발방식을 바꿨지만 실제 최종합격자는 2002년의 선발예정 인원이던 600명에서 큰 차이 없이 매년 600~700명 안팎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처럼 선발인원을 사실상 규제하면서 직종별 경력자에 대해서는 합격이 쉽도록 특례를 주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세무사·관세사·감정평가사·공인회계사·변리사·법무사 등이 주요 사례라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분석했다.
전문직들이 직종 간 업무영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장벽을 쳐놓은 것도 칸막이 규제로 꼽힌다.
예를 들어 건축설계사무소는 건축사만 개설하도록 돼 있다. 이러다 보니 건축사무소는 대부분 소규모 영세업체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형화·겸업화가 안 돼 미국·유럽 같은 대규모 종합 건설엔지니어링 업체가 탄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4차 건설산업진흥기본계획을 통해 "설계·감리 등 업역 세분화로 종합 엔지니어링 업체 육성이 곤란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뒤 "설계-감리-CM의 유기적 통합을 위해 관련 법령과 지침 등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는 대외발표일 뿐 실제로는 부처 내부에서 혼선이 일고 있다. 실제로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건설산업진흥기본계획에 대해 "그것은 건설경제과의 입장이고 우리 생각은 다르다"며 "건축사자격증 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발표내용과는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법조 전문직(변호사·변리사·법무사) 등도 다른 전문자격사가 진입할 수 없도록 고유 업무영역에 칸막이를 쳐놓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의료 부문의 자격규제는 더욱 강력하다. 현행법은 의료기관 개설자격에 대해 종합병원·의원 등은 의사만, 치과병원·의원 등은 치과의사만, 한방병원·한의원 등은 한의사만, 약국은 약사·한약사만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원칙적으로 설립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업종 칸막이를 완화하기 위해 법인약국 허용, 의료법인 자회사의 영리사업 범위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관련업계가 의료·보건의 공공성 훼손을 빌미로 강력히 반발해 향후 정부 방침이 국회 입법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직의 서비스 수수료 등을 관련법이나 동종업계의 규칙 등으로 제한하는 가격규제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고영선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과거의 한 보고서에서 전문서비스업 시장 진입규제의 폐해에 대해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고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킨다"며 "능력을 갖췄으나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은 시장진입이 불가능해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진입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경력자에 대한 시험특례 폐지 △가격규제 폐지 △회사형태 제한 폐지 △단체를 통한 담합행위 금지 등이 추진돼야 한다는 게 고 차장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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