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환율정책이 기로에 섰다. 정부는 그동안 최우선 정책목표인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하락(원화강세)을 용인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다 그리스 부도 폭탄까지 터지면서 수출전선 방어가 사활을 건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불안기 최후의 보루인 경상수지가 지난 8월에 18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이 때문에 정부가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통해 환율급등은 막겠지만 어느 정도의 상승추세는 방관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경상수지 방어에 힘 실릴 듯=기획재정부는 지난 13일 국제금융시장 점검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적정한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를 중시해나가겠다"고 못박았다. 재정부는 "개별 시장 움직임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나갈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정부의 환율정책이 물가 일변도에서 벗어나 금융위기 상황을 맞아 경상수지로 시계추가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경상수지에 비상등이 켜질 경우 곧바로 대외신인도 하락과 금융시장 불안,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 8월 경상수지가 지난해 2월 이후 1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면서 정부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8월 경상수지는 적자를 면하더라도 겨우 균형을 맞추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시화될 경우 경상수지 악화 추세가 굳어질 수도 있다는 게 재정부의 고민이다. 이 관계자는 "8월에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수출은 앞당기고 수입은 늦춘 것을 감안하면 9월에도 경상수지는 좋지 않게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최 라인에 관심 집중=최근 신제윤 재정부 1차관이 돌아오면서 기존의 최종구 국무업무관리관과 함께 '신-최 라인'이 형성된 것도 환율정책의 변화를 조심스레 점치게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강 라인(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최중경 차관)'이 형성된 지 3년 만에 '외환 매파'들이 환율정책을 담당한 것이다.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차관은 경상수지 방어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펴다 유가 폭등 등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최 차관이 3개월 만에 경질된 바 있다. 물론 '신-최 라인'의 경우 '최-강 라인'에 비해 세련됐고 시장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위기국면에서는 경상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외환 매파로 분류되고 있다. 14일 원ㆍ달러 환율이 30원50전이나 급등하며 4개월 만에 1,100선을 넘어섰는데도 정부 차원의 흔한 구두개입 하나 나오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도 이날 "장중에 미세조정을 위해 달러 매도 물량이 나왔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때마침 13일 신 차관이 처음으로 주재한 국제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서 '경상수지 흑자 중시'를 강조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물론 물가상승 압박이 여전히 높은데다 내년 선거도 앞두고 있어 정부가 환율정책을 급격히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유럽발 위기로 국내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하고 수출마저 타격을 입을 경우 물가보다는 수출을 고려한 환율정책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성장이나 물가가 불안하면 국민들이 고통받는 정도지만 경상수지 악화가 지속되면 국가부도 사태까지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래저래 정부의 환율정책이 '물가'와 '경상수지'에 끼어 시험대에 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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