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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여자아이인 휘는 식사 시간이 되도 좀처럼 식탁에 앉지 않았다. 그림책을 보거나 인형을 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알록달록한 캐릭터가 그려진 식판을 놓아주어야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도예가인 아빠는 딸에게 차마 유해물질이 묻어나는 플라스틱 식판이나 음식을 산성으로 바꿔버리는 스테인리스 식판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자동차, 가방, 집 등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도자기 식판 '테르휘(Terre Hui)'다. 테르는 불어로 '흙'을 의미한다.
14일 서울 청담동의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김도훈(36ㆍ사진) 세창아트앤디자인 대표는 "1년간 숱한 시행착오 끝에 다양한 디자인의 유아용 도자기 식판 양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며 "약 900도로 흙을 구운 후 유약을 입혀 1,300도에서 한 번 더 굽는 전통 도자제작 방식으로 만들어 납, 카드뮴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전혀 없는 친환경 도자기"라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2002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김세용 선생의 장남으로 어린 시절부터 도자기를 빚었다. 대학에서는 조소학, 대학원에서는 세라믹공학을 전공했다.
유아용 도자기 식판의 출발점은 세 살배기 딸을 식탁에 앉히기 위한 것이었지만 양산을 하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선 흙의 특성상 고온으로 구우면 크기가 변하기 때문에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김 씨는 "흙은 고온으로 구우면 수축하는 데다 음식이 담길 정도의 깊이를 내는 것도 어렵다"며 "도자학 뿐만 아니라 세라믹공학, 조소학 등을 전공하며 축적된 지식을 총동원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도자기를 대량생산하는 대부분의 생활도자기 업체들과 달리 김 대표는 흙에 담긴 유해물질을 모두 제거할 수 있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공장은 도자 본고장인 경기도 이천에 있고 도자 전문가들이 직접 색을 입히고 유약을 바른다. 김 대표는 "대형업체들은 대량생산을 위해 공정 전반을 기계화하다 보니 흙을 틀에 넣어 높은 온도로 구운 다음 유약을 바르고 낮은 온도에 굽는다"며 "이렇게 만들면 강도는 세지고 색도 진해지지만 납, 카드뮴 등 유해물질이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품 출시 후 겨우 6개월 가량 흘렀지만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아 시장 반응도 좋다. 아이의 이름을 식판에 새겨주는 데다 구입 후 6개월 이내 식판이 깨졌을 때 동일 제품으로 바꿔주는 워런트 서비스를 시행하면서 선물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AK플라자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롯데쇼핑, 신세계몰 등 주요 온라인쇼핑몰과 친환경제품, 키즈 제품 등을 파는 편집숍에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9월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신세계 계열 프리미엄마켓 SSG에서도 판매한다.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맞게 관심분야를 반영한 식판도 속속 출시할 예정이다. 또 아내의 이름을 딴 '테르 쏭' 브랜드로 생활 도자를 8월에 출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그의 이름을 딴 '테르 도' 브랜드로 도자 인테리어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김 씨는 "가볍고 싸다는 이유로 국내에선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종이 등으로 만들어진 식기나 소품을 많이 쓴다"며 "하지만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일본처럼 다양한 생활용품에서 도자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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