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재계와 증권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이다. 창업주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들이 건강 이상 또는 고령으로 왕성했던 활동을 계속 이어가기 어려워지면서 재계에서는 3세 경영인으로의 승계 작업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그동안 국내 증시 디스카운트의 빌미가 됐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일은 한국 기업집단에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면서 "각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에 따른 수혜주를 미리 예상하고 투자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삼성SDS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이어 12월에는 제일모직의 상장이 예정돼 있는 등 삼성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 및 경영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지배구조개편 관련 주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재계의 기업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출자구조의 단순화와 함께 경영권 유지와 세금 문제까지 풀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바뀐 사회 상황과 여론을 감안하면 경영권 유지를 위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승계 오너들이 정공법을 택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구조 개편의 양상에 따라 주가 흐름이 크게 뒤바뀔 수 있는 만큼 개편 시나리오와 개편 방향을 꼼꼼히 챙기고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주요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 투자 전략을 분석한 결과 삼성그룹의 경우 제일모직·삼성생명(032830)·삼성화재(000810)·삼성전자(005930) 등이 대표적인 수혜주로 분류됐다. 노근환 부장은 "삼성그룹은 오너 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하는 제일모직을 최정점으로 한 축에는 삼성전자 중심의 제조업 계열사, 다른 한 축에는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계열사를 수직계열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이 커지면 삼성전자에서 분할되는 삼성전자홀딩스와 합병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지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제일모직은 상장 이후 보유 부동산의 지분가치, 바이오산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밸류에이션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는 제조업 지분 매각으로 수익자산이 늘고 배당성향이 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개편 직전에는 자사주 매입, 개편 이후에는 배당성향 상향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장기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들어 계열사 정리에 속도를 내는 현대차그룹도 주목해볼 만하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시장이 생각하는 속도보다 빨리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의 특징은 내부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정의선 부회장으로 후계자 구도가 일찌감치 정해진 점이다. 하지만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현대모비스(012330)에는 정작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이 아직 없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현대차의 경우 지배구조 개편 과정과 개편 후를 구분해야 한다. 현재 개편 과정에서 최대 수혜주는 현대글로비스(086280)지만 개편 후의 수혜주는 그룹 중심으로 부각될 현대모비스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비스는 지난 3년간 지배구조 개편 관점에서 펀더멘털 대비 저평가가 지속됐다"면서 "지배구조 개편 시가가 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는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한 모비스를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SK(003600)그룹의 경우 SK C&C와 SK지주 간 합병 전후에 따라 투자전략을 달리 세워야 한다. 합병 전에는 최태원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SK C&C가 유리한 구도지만 주가에 이미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 만큼 합병 결정 이후 시장 주가와 주식매수 청구권 가격 차이를 활용한 매매 전략이 필요하다. 롯데그룹은 장남 신동주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간에 지분율이 비슷해 정리과정이 필요하다. 후계구도가 산업군별 분리로 진행된다면 그룹 내 복잡한 순환출자가 상당 부분 해소돼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이 경우 롯데제과와 롯데칠성(005300) 등 현금흐름이 좋은 종목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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