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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과 인치/우원하 정경부(기자의 눈)
입력1997-02-13 00:00:00
수정
1997.02.13 00:00:00
우원하 기자
김영삼 대통령은 요즘 말을 아끼고 있다. 공식일정을 최소화하면서 그나마 한보사태와 관련된 언급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11일 구속된 홍인길의원과 12일 검찰에 소환된 황병태 의원, 김우석 내무부장관 등 현재까지 드러난 한보사태의 주역들은 모두 김대통령의 직계인물들이다. 가신 내지는 민주계로 분류되는 정권의 핵심인물들이다.
일부에서는 「수족을 잘리는 아픔을 감내하고…」운운하고 있다. 측근들을 사법처리하는 김대통령의 진노와 단호함 그리고 비장함 등을 부각시키는 말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또한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김대통령이 정면돌파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칼국수만 먹겠다던 김대통령의 입장에서 볼때는 분명히 크나큰 상처와 배신감,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같은 청와대의 분위기는 일반국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있다.
국민들은 지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문민정부 전체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터이다.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부패와 부정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의 거짓말 행태로 인해 상처받은 쪽은 오히려 국민이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무슨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통령이 진노했다느니 하는 보도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면서 『지금이 왕조시대냐, 최종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돈을 안받았다고 하지만 밑에 있는 사람이 받았다면 그마저 의미가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문민정부는 강력한 돌파력으로 금융실명제 등 개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표적사정, 편파적인 인물등용 등으로 법치보다는 인치를 중시했다. 그 허점을 비집고 권력의 그늘 아래 있는 측근들의 부정이 있었다. 인치가 성역을 만든 것이다.
인치는 문민정부가 개혁을 위해 날린 부메랑이었지만 이제는 돌아와 수족을 자른 셈이다.
자의적 검찰권행사도 인치의 일환이었다. 이번 검찰의 한보수사가 다시 인치적 요소를 안게되면 날선 부메랑은 문민정부임기가 끝난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김대통령이 정말로 비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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