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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그룹:6(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입력1997-07-11 00:00:00
수정
1997.07.11 00:00:00
정승량 기자
◎“잠재력 무한지대” 초고속 질주/구소련 공략 전진기지/99년 연산 9만대 목표/「선수경영」 무르익는다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2시간을 가야 도달하는 칼리닌그라드.
윗쪽으로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3국이 자리하고 있고 아래로는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다. 국내에는 알려진게 거의 없는 러시아령 발틱해 인근의 소도시로 러시아에서는 떨어져 있어 「육지의 섬」 「러시아의 홍콩」으로 불린다. 구소련 당시 이 곳은 서방국가들에게는 「철의 장막」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감추어져 있었던 곳이다. 잠수함을 비롯한 군사요충지 였지만 인공위성을 통해서도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국산차가 생산돼 러시아를 비롯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곧 판매된다. 러시아가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는지, 또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이 해외진출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절감하게 하는 곳이다.
잠수함 기지를 자동차 생산라인으로 바꾼 기업은 기아자동차다. 기아는 현지업체인 FPI그룹과 합작으로 연산 5만대 규모의 「기아 발티카」공장을 설립했다. 국내 자동차업체 가운데 러시아 진출은 기아가 처음이다. 기회를 선점하는 「선수경영」을 편다는 기아의 해외전략을 확인케 한다.
기아가 이 곳에 생산기지를 갖춘 것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이 그 출발이다. 김선홍 기아그룹회장은 지난해 예친대통령으로 부터 꼭 한번 만나자는 전갈을 받게된다. 현지에 간 김회장은 예친대통령의 건강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죽으로 된 두툼한 친서를 받게된다.
『칼리닌그라드에 자동차 공장을 만들고 싶으니 기아에서 도와주면 고맙겠다』는 정중한 요청이 들어있었다. 김회장은 프로젝트팀의 구성을 지시했고, 러시아 최초의 국내 자동차 공장건설이 시작됐다.
지난 5월 16일부터 자동차를 뽑아내기 시작한 이 공장의 생산차종은 세피아, 스포티지와 승합차 등이다. 현지인력 4백50명이 투입돼 있는 이 공장은 러시아내에서 가장 최신의 설비를 갖춘 공장으로 알려지면서 명물이 됐다.
1억5천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러시아의 연간 자동차판매량은 1백50만∼1백70만대. 국내에서 지난해 4천만명이 1백64만대의 자동차를 구입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잠재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있다.
반면 러시아자동차 산업은 지난 90년이래 퇴조의 길을 걷기 시작, 시장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70년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러시아 최대승용차업체인 「오토바즈」(연산 생산능력 66만대)를 제외하고 「가쯔」(41만대), 고급리무진을 생산하는 「질」(51만대) 등 대부분 업체의 생산시설이 20∼30년대 것으로 노후화 된데다 전체 가동률도 30%를 밑돈다. 오토바즈의 대당조립시간은 4백50시간으로 선진국메이커의 20∼51시간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일부업체의 경우 임금 미지불 사태까지 벌이지고 있다.
러시아 거리를 누비고 있는 현지 최고 인기모델인 승용차 「라다」「볼가」와 지프형인 「니바」 등 주요모델도 구형모델이다. 판매망도 체계적이지 않아 「라다」의 경우 지역에 따라 2천달러 이상의 가격차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언제부턴가 신흥부유층으로 불리는 「뉴 러시안」이 급부상하기 시작, 자동차 구매층이 본격적으로 형성돼가고 있다. 혼란속에서 러시아 국내총생산(GDP)도 92년 14.5%, 93년 8.7%, 94년 12.6%가 감소, 한때 위기상황에 몰렸으나 95년에는 감소폭이 4%에 그침으로써 경제가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청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지난해 7월 30일 양사의 합작서명식에 체르노미르딘 총리와 러시아 주요정부 각료들이 동석한 것도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이전을 약속한 기아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케한다. 『오는 99년까지 생산능력은 9만대, 임직원을 1천2백명으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김팀장은 의욕에 넘친 목소리로 말한다. 기아는 현재 주요부품을 부산에서 칼리닌그라드까지 해상수송하고 있지만 앞으로 현지부품물류센터 건설과 부품업체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 칸트의 고향,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의 첫 연인의 출생지, 과거 독일영토였다 스탈린시대 러시아 영토로 귀속돼 아직도 거리곳곳에 독일건축양식을 감상할 수 있는 러시아의 경제특구 칼리닌그라드에서 기아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칼리닌그라드(러시아)=정승량 특파원>
◎김준배 부장·러시아프로젝트 팀장/“품질력 초기확보로 「기아 붐」 일으킬 것”
『기아차는 품질에 비해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갖춰 현지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킬 것으로 확신한다.』
김준배 기아자동차 러시아프로젝트 팀장(부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81년 기아에 입사, 무역파트에서만 줄곧 근무해온 해외통이다. 러시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캐나다 지사장 5년 생활을 접고 지난해 6월 귀국, 국내 첫 러시아생산거점인 「기아 발티카」공장 설립을 진두지휘해 왔다.
기아에게 있어서 러시아 현지공장 진출의 의미는 무엇인가.
▲구 소련이 붕괴된 뒤 한국기업으로는 최대규모의 현지투자로 알고 있다. 무궁무진한 잠재시장을 선점, 기아의 세계화 전략에서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본다. 민간 외교차원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판매 전략은 어떻게 짜고 있나.
▲지난 5월 16일부터 생산에 들어가 일부는 현지 판매에 들어갔다. 초기 품질력의 확보를 통해 기아붐을 이뤄보겠다는 차원에서 마무리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산품이 러시아연방 구석구석으로 수송되고 있다. 당분간 합작사인 FPI그룹의 판매망을 이용하겠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필요하다면 합작판매망 설립도 구상중에 있다.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의 반응은.
▲당초 러시아 정부는 선진국업체들도 이뤄내지 못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러나 러시아내에서 최고수준의 첨단시설이 들어선 공장을 완공해 지난 5월부터 차를 뽑아내기 시작하자 『동양의 기아자동차가 큰 일을 해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오는 98년 하반기에는 현지국산화율을 25%까지 올릴 예정이어서 지역주민들은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른 업체들의 러시아시장 진출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기아 발티카 공장은 엘친 러시아대통령이 러시아 자동차산업 육성차원에서 직접 관심을 갖고 추진한 국책사업의 하나다. 따라서 러시아정부의 금융지원은 물론 수입관세가 거의없고 특소세도 감면받는 등 현지업체와 동등한 조건을 부여받았다.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업체들이 들어온다해도 이런 특별대우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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