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었다.' 올해 금융권을 결산하면서 총평을 한다면 꼭 빠지지 않을 한 마디다. 금융권이 정부와 손뼉을 맞춰 저금리 금융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금리ㆍ수수료 인하에 줄줄이 동참하면서 서민금융이 만개했다. 서민들은 금융권의 저금리 금융서비스를 지렛대 삼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 같은 환경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했다는 점에서 관치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서민을 위한 관치'라면 일정 수준 용인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기에 시장 논리만으로는 서민구제가 힘겹다는 점과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제도권 금융기관이 국민에게 빚을 졌다는 점이 가세하면서 공감대가 확산됐다. ◇20만명이 '햇살'에 '희망' 품고 '미소' 지어=올해 서민금융 분야의 핫이슈는 단연 햇살론ㆍ새희망홀씨대출의 등장과 미소금융 대출의 활성화였다. 이들 서민금융 트로이카를 통해 올해 저리의 자활자금을 빌린 소외계층은 무려 20만명에 육박한다. 금액 규모로도 올해 1조6,000억원 이상이 대출돼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햇살론은 그야말로 불티가 났다. 지난 7월 말 첫선을 보인 후 최근까지 불과 5개월여 만에 15만여명에게 총 1조3,000억원선의 자금을 빌려줬을 정도다. 대부업체 등에서 보통 연 30% 이상의 고금리를 내야 대출 받을 수 있었던 소외계층에게 연 10%선의 금리를 제시한 것이 인기 비결로 꼽혔다. 대출자격을 저신용계층(신용 7~10등급)뿐 아니라 6등급으로까지 확대하고 사업ㆍ창업자금 이외의 긴급생계자금까지도 빌려주기로 한 점 역시 수요를 불러모았다. 햇살론이 양적 성공을 거뒀다면 미소금융은 질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단순 대출이 아니라 사후 창업 컨설팅까지 해준다는 점에서 한층 선진적인 서비스로 주목 받았다. 이는 '저리 대출→창업ㆍ사업 컨설팅→대출자 자활 성공 및 원리금 상환→대출 재원 보전→사업 지속실행'이라는 선순환의 서민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에 대출지점 설립 100곳을 돌파해 서민의 접근성을 높였고 그 덕분에 사업개시 1년여 만에 2만명이 넘는 서민들이 미소금융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새희망홀씨대출 역시 최근까지 2만여명이 넘는 소외계층에 총 1,598억원의 저리 자금을 빌려주는 실적으로 달성하며 약진하고 있다. 이들 트로이카 서민금융상품으로 재기의 기회를 얻은 저신용ㆍ저소득계층이 올해에만 20만명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기존의 자산관리공사 '전환대출', 이지론 '환승론', 신용회복위원회 '소액금융지원' 서비스, 미소금융중앙재단 '전통시장 소액대출' 등도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금융 음지는 한층 더 좁아지고 있다. ◇제2금융권 고금리와의 전쟁=이 분위기에 휩쓸려 제2금융권과 대부업계에서는 고금리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이자율 상한선을 기존의 연 49%에서 44%로 낮춘 대부업법 시행령이 7월부터 발효된 가운데 최근에는 이자상한선을 최저 연 30%까지 대폭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추가적인 입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카드ㆍ캐피털사들도 정부의 방침에 순응해 각종 수수료 인하에 동참하며 서민을 짓누르던 금융비용 부담이 한층 가벼워졌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수수료는 지난해 1~9월 평균 26.0%였던 것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23.30%로 하락했으며 카드론 이자율도 같은 기간 19.13%에서 16.32%로 떨어졌다. 캐피털사들도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잇따라 인하해 7월에는 업계 평균 이자율이 32.0%에서 28.4%로 하락했다. 현대ㆍ하나ㆍ롯데캐피탈은 이 기간 평균 금리가 아닌 최고 금리를 32%에서 28.4%로 내렸다. 영세상인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카드 가맹점 수수료도 하락했다. 2000년 말 2.92%였던 카드가맹점 수수료는 2008년 말 2.22%, 2009년 말 2.15%, 올해 3ㆍ4분기 말 2.11%를 기록하며 내리막을 타고 있다. ◇시장과의 공존, 서민금융 지속이 과제=올해 서민금융서비스는 유례없이 만개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도 많이 남겨놓았다. 무엇보다 서민금융시스템과 시장의 공존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해 만든 정책성 서민금융상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오히려 저축은행 등 민간 서민금융기관들의 저신용ㆍ저소득계층용 금융상품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왔다. 미소금융재단 설립 이전부터 마이크로크레딧(저신용자 소액신용대출) 사업을 해온 민간단체들마저 "상대적으로 그늘에 가려지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정책성 서민금융을 지속하면서도 민간과 시장의 서민금융시장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의 금리조정, 대출자격ㆍ삼품 조율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금융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해주는 것도 당면 과제다. 이를 위해 ▦자발적 민간 출연 재원 확보 ▦대출 부실 최소화 ▦대출신청자들의 도덕적 해이 방지 ▦서민금융 사업자들의 부패 가능성 원천 봉쇄 등에 초점을 맞춘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의 사례를 참조해 금융ㆍ유동사들이 각종 낙전 수입을 서민금융재원으로 출연하는 법제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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