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환율 악재와 모멘텀 부족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투자자들의 전략모색도 난항을 겪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증시 속에서도 수익을 내야 하는 자산운용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특히 운용사의 자산운용을 총괄하는 최고투자책임자ㆍ주식운용본부장(CIO)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들 CIO는 요즘 어떤 전략과 전망으로 '한 발 앞선 투자'를 지휘하고 있을까.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ㆍKB자산운용ㆍ한국투자신탁자산운용의 CIO를 만나 전술을 들어봤다.
저마다 세부 전략은 달랐지만 '지난해 대비 올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과 '주식비중을 늘려야 할 때'라는 분석만큼은 공통된 그림이었다.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전무는 "지난해 대비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가 완화됐다"며 "잡음은 있을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기가 완만한 회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유럽 역시 어려운 상황은 여전하겠지만 둔화 폭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남동준 삼성자산운용 상무 역시 올해 경기 회복을 점치면서도 회복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 유럽 일부 국가의 경기 지표가 호전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조일 뿐 몸통의 변화는 아니라는 게 남 상무의 지적이다.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하반기로 갈수록 상승 탄력이 붙을 것으로 분석했다. 송성엽 KB자산운용 상무는 "미국ㆍ중국의 경기 호조가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라며 "2ㆍ4분기 이후부터 증시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4ㆍ4분기 이후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종료 우려로 상승추세가 둔화되고 변동성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무도 "현재 국내 증시가 엔화 약세로 인해 글로벌 증시와 따로 가고 있지만 악재에 대한 소화 기간이 지나면 완만한 수준의 상승을 이어갈 것"이라며 "1ㆍ4분기는 부진하겠지만 2ㆍ4분기부터 불안정하지만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봤다. 여러 난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V'자형 반등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세 사람 모두 '주식 비중의 확대'를 주요 투자전략으로 제안했다. 남 상무는 "최근 금리하에서는 주요 수익이 주식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동안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자금이 빠질 만큼 빠졌고 최근 지수대도 매력적인 만큼 국내 주식형펀드, 특히 액티브펀드 신규 투자자들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 전무는 "한국의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글로벌보다 한발 늦게 시작된 만큼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불고 있는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이동도 당장 올해 크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자금 일부를 주식 쪽으로 먼저 이동시켜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송 상무도 뱅가드발 매물 출회가 완화되는 3월 중순부터는 국내 주식형펀드 투자 전략이 유효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증시에 영향을 미칠 복병으로는 단연 환율을 꼽았다. 김 전무는 "중기적으로 원화강세가 불가피한데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 같은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마진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실적 등에서 타격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송 상무 역시 "엔ㆍ달러 환율이 95엔을 고비로 더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엔화 가치가 워낙 한꺼번에 급락했기 때문에 국내 증시 수급을 압박하는 잠재적인 리스크로 당분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 상무는 "환율은 속도의 문제일 뿐 경쟁력을 깨트리는 요인은 아니다"라며 "원화 강세의 민감도는 1~2월 증시에 반영된 만큼 2월 말~3월로 가면서 환율 하락 속도가 완만해지면 증시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 상무는 오히려 중국 경기 회복 지연을 복병으로 꼽았다. 중국의 회복 기대감이 최근 전세계 증시의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하는 만큼 실제 결과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중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운용은 5년 가까이 소외됐던 유틸리티ㆍ통신서비스 업종을, KB운용은 낙폭과대 이후 반등을 모색 중인 화학ㆍ철강ㆍ조선업종을 유망하게 내다봤다. 한국운용은 지난해 크게 빠졌던 의류ㆍ유통업종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환율 악재 속에서도 자동차와 정보기술(IT)업종에 꾸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다만 세 사람 모두 "경기가 획기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업종이 트렌드를 갖고 증시를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업종 내에서도 개별 기업 차원의 접근이 유효할 것으로 전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